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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D컬렉티브 Apr 11. 2021

제스퍼 존스(Jasper Johns)

:  당신만의 암호를 만들어라.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요좀 더 고집을 부릴 수 있었죠내가 받았던 관심 때문에 구속되기보다는 거기서 이득을 얻었다 느낍니다.” 

제스퍼 존스     


제스퍼 존스, 2013


개인의 정체성이 더욱 중요하게 된 한국사회. 자신만의 암호와 개성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져야 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정해진 일상을 생활하기도 벅찬 우리에게 개성뿐만 아니라 나만의 콘텐츠까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고민까지 덤으로 안겨주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생각보다 어려웠던 과거에는 사회적 풍자, 자기고발, 정치적 메시지 등은 금기어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익명의 대중으로 살아가기에는 취향과 나만의 기호. 특유의 개성을 살리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준비를 해야 하는 때이다. 온전히 자신의 취향에서 시작된 다중적인 정체성, 소위 멀티페르소나. 현재의 우리의 모습 속에 다양한 모습들로 드러나고 있다. 

    

개성멀티페르소나 그리고 나      


이제는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 자기만의 개성을 제대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마디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정 짓는다는 것. 사실상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유동적인 환경의 변화와 함께 도래한 디지털 공간에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타인과 소통한다. 개인의 취향이 전적으로 중요하게 된 요즘. 그럼 나라는 사람은 어떤 표현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는가? 미술계에도 그런 예술가가 있다. 좀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기 어려운 예술가. 자신만의 특유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그 시작은 어려웠던. 제도화된 것들에서 온전히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서 힘든 여정을 나섰던 바로. 제스퍼 존스(Jasper Johes, 1930~)이다. 존스에 대해서 안다는 것, 특히 그의 작품의 의미나 해석하는 것은 실로 어려움이 따른다. 존스는 어떤 예술가보다도 자신만의 추상적인 암호로 해독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언제나 존스의 작품은 열린 해석을 제공하며, 왜 그 작품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존스는 자신만의 암호로 다중적인 정체성을 만들어냈고, 특유의 기호와 알레고리를 제시한다.       


# 나다운 것나를 주목시키다.     



제스퍼 존스 , <백기>, 1955 , <깃발>, 1954~1955,  <4개의 얼굴을 가진 과녁>, 1955 , <장치 서클>, 1959


흔히 알레고리, 기호라고 하면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내는 철학적인 측면이 포괄된다. 존스가 제시한 알레고리와 기호는 읽어내기 위해서 요구되는 사전지식들이 있다. 있는 그대로를 표출하고자 하였던 바스키아의 기호와는 다른 차원이다. 그렇기에 존스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추상적이면서 난해하다. 사회에 대한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견주어 보여준 바스키아와 다르게 존스의 알레고리는 왜 이렇게 작품을 제작하였는지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지 우리의 생각만으로 사회를 직접적으로 투영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미학적인 전통에 대한 반기인 것인가?  존스가 제시한 대표적인 소재는 깃발, 과녁, 숫자, 알파벳이다. 이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일 수도 있으며, 소비자본주의사회를 상징하는 주제가 될 수 있다. 존스가 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깃발 Flag>(1954~1955), <백기 White Flag>(1955), <4개의 얼굴을 가진 과녁 Target with Four Faces>(1955), <장치서클 Device circle>(1959), <0에서 9 0 Through 9>(1960)등이 있다. 공통적으로 추상적인 붓질과 질감, 회화적인 표현, 오브제와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오랜 시간을 지켜온 캔버스의 미학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존스가 그 시작을 알렸다.     

  

제스퍼 존스의 암호 풀기      


회화적인 표현과 오브제의 공존이 캔버스 위에 펼쳐졌다. 여기서 존스가 제시한 것은 깃발, 과녁, 숫자, 알파벳 등의 표현 혹은 오브제와 추상적인 붓질이 함께 혼재되어, 다의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말 그대로 존스의 작품은 암호로 둘러싸여 있다. 어떤 해석도 가능한 존스의 작품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구성적인 측면에서 존스의 캔버스는 회화와 오브제의 새로운 콜라주가 기반을 이룬다. 콜라주를 매개로 상호관계를 이루는 평면과 3차원적 물질 간의 평평한 줄다리기이다. 존스는 캔버스를 완전히 탈피하지 않으면서도, 오브제를 사용하여 이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방법과 그 과정을 보여준다. 


성조기구상과 추상 사이      


제스퍼 존스 , <깃발>, 1954~1955

존스에게 깃발과 백기는 미국의 성조기가 대상이 된다. 존스는 독보적인 아메리카니즘으로 성공한 강대국으로서의 입지. 미국을 알린다. 어떤 면에서는 앤디 워홀의 캠벨 스프보다는 상업적이기보다는 성조기에서 회화적이면서도 절제된 감각이 느껴진다. <깃발>(1954~1955)은 깃발의 이미지를 원근법을 배제시키고 평면적으로 구성하여, 그 강렬한 원색만이 더욱 돋보일 수 있게 계획하였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 작품이 성조기인지는 사실 한 부분을 몰입하며 보면. 캔버스에 흰색과 빨강색으로 조합된 구성회화이다. 하지만 색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보는 순간, 신문과 같은 종이의 재료들이 발견된다. 존스가 자주 사용한 납화법(encaustic)을 활용하여. 붓질과 오브제로 표면의 질감을 살린다. 바로, 추상과 구상의 절충이 이런 것이 아닐까?      


제스퍼 존스 , <백기>, 1955

또 한편 <백기>(1955)에서 이러한 구성방식은 흰색을 전체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 외에 다를 것이 없다. 존스가 제작한 깃발들 중에서도 가장 크게 제작되었으며, 세 개의 분리된 패널에 밀랍에 담근 종이와 천, 기름, 신문 용지 및 목탄을 사용했다. 

최소한의 색으로 절제된 듯한  <백기>(1955)는 <깃발>(1954~1955)와 같이 질감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다. 거칠고, 약간은 두터운 표면이 붓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살짝 돌출된 느낌을 준다. 이 또한 납화법을 활용하였다. 또한 <백기>(1955)를 자세히 보면. 별, 줄무늬 , 더 긴 줄무늬가 결합되어 전체를 구상했다. 하지만 콜라주한 표면. 붓질과 결합. 깃발의 이미지는 사실상 관심 있게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다. 이것이 존스의 작품에 묘미이기도 하다. “자세히 들여다 봐라, 그럼 보일 것이다.”  

    

존스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맞서다     


존스는 1958년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Leo Castelli Gallery)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미국의 미술계는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제도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그들과의 상당한 의견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깃발>(1954~1955), <백기>(1955)가 소개 된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4개의 얼굴을 가진 과녁>(1955)또한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였다. 추상표현주의 화가와 마주한. 실질적으로 선두에 앞장 선 예술가가 존스였기에 그의 시작은 새로운 혁신이자 반동이었다. 추상과 구상사이에서, 색다른 주제와 다른 방식으로의 예술에 대한 접근방식이 존스를 상당히 주목시키는 이력이 되었다.


제스퍼 존스, <4개의 얼굴을 가진 과녁>, 1955


 성조기와 같이 <4개의 얼굴을 가진 과녁>(1955)은 존스의 또 다른 변신이었다. 나무뚜껑으로 눈은 제외하고 코와 입만 절단된 머리의 하단부만 보이게 새긴 4개의 석고조각과 과녁을 병치시켰다. 왜 눈은 보여주지 않은 것일까? 과녁에서는 원 형태를 중심으로 색마다 두터운 질감이 느껴진다. 납화법으로 진행한 존스의 붓질과 오브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여기서의 의문은 캔버스의 상단은 석고조각으로 과녁의 이미지는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표현된 시각적 이미지와 배경의 성격상 불일치하다. 어떤 관계보다도 불편해 보이는 이 이질적인 관계가 <4개의 얼굴을 가진 과녁>(1955)에서 표현됐다.      


아이러니한 석고조각장치서클 그리고 알파벳     



제스퍼 존스, <장치 서클>, 1959


존스는 <4개의 얼굴을 가진 과녁>(1955)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장치서클>(1959)도 그 한 예이다. 캔버스 위에 움직이는 팔 장치를 납화법을 활용하여 콜라주한 작품이다. 제목그대로 팔이라고 표현되는 그 장치가 원을 돌아가면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어떤 붓질보다도 더욱 두껍고 거칠어졌으며, 빨강과 파랑색, 그리고 노란색, 흰색이 움직이는 팔 장치를 통해서. 기계적으로 색이 표현된 인상을 가지게 한다. 특히 하단에는 장치서클의 알파벳이 살짝 노출되면서, 거기에 추상적인 붓질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장치와 신체적 행위의 동작이 가미되는 <장치서클>(1959)은 예술가의 표현과 그에 따른 신체적 흔적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임을 암시한다.  


#알파벳숫자나만의 기호      


제스퍼 존스, <색상의 숫자>, 1958~1959

존스는 자신의 신체적 흔적으로 장치를 통해서 드러내면서도. 알파벳, 숫자를 오려붙인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에 열중했다. <색상의 숫자 Numbers in Color>(1958~1959)는 존스가 숫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캔버스 위에 납화법으로 신문표면의 질감만을 살리면서. 위에서부터 끝까지 끝없이 숫자가 작성되어 있다. 질서를 만드는 익숙한 수의 기호, 숫자를 존스는 캔버스에 자신만이 암호와 같이 배열하고, 어떤 규칙도 없다. 우연적으로 나열한 듯하지만. 존스의 숫자는 자신만이 아는 배열이다. 오로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숫자가 0에서부터 9까지 있으며, 몇 번의 붓질이 오가고, 숫자의 외곽을 흰색으로 강조한다는 사실 뿐이다. 유독 숫자의 형상이 제대로 보여 지는 것은 붓질의 표현 때문이다. 




색의 경계가 탈피된 지도     


제스퍼 존스, <지도>, 1961


<지도 Map>(1961)는 캔버스 위에 유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색상의 숫자>(1958~1959)에서 숫자가 소재였다면, <지도>(1961)는 미국, 멕시코, 캐나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가 소재가 되었다. 사실. 존스의 아이디어는 단순한 소재인 듯하지만. 매우 흔하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지도를. 캔버스에 표현했다는 사실을 주목시킨다. 보통의 지도와는 분명히 다른 존스의 지도이다. 존스의 거친 붓질로 윤곽선만이 살아있다. 색의 거친 붓질은 지역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동시에 파괴한다. 


채색된 브론즈역시 섬세했다     


제스퍼 존스, <채색된 브론즈>, 1960

존스는 또한 <채색된 브론즈 Painted Bronze>(1960)와 같은 조각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완전한 오브제 형태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지만 역시나. 존스는 존스였다. <채색된 브론즈>(1960)은 발렌티노 라벨이 붙어있는. 맥주회사제품의 이미지를 본 떠 깡통 두 개를 청동으로 제작했다뚜껑이 열린 상태로 깡통 하나를 주조했고. 또 하나의 깡통은 개봉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색을 칠했다그 사이 유독 눈에 띄는 라벨에서. 우리는 존스를 발견할 수 있다. 실제 라벨이기보다는 그려진 라벨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사실을 통해서 말이다.      

 

자신만의 언어정체성 구축       


존스는 언제나. 역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작품은 그만의 상징기호가 있다. 파편적으로 드러나는 붓질 하나 하나에도 존스의 확고한 개성이 드러난다. 추상표현주의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미국 미술계에서.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작품을 작업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길이었다. 하지만 존스의 선택은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었다. 미학적 전통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필요하다 인식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추상과 구상사이, 추상과 오브제 사이에서 미묘한 충돌을 일으키면서, 방향성을 잡아갔다. 사실상 누구도 존스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의 철학과 신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불가능하다. 누구보다도 단단하고 특유의 에너지가 잠재된 예술가임은 분명하다. 우리 역시도 유동적으로 급격하게 변화는. 이 사회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좀 더 묵직하고 단단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개성을. 좀 더 깊이 있고 밀도있는 질감과 표현으로 상징적인 자신만의 기호를 끊임없이 성찰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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