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과 사색

미래의 파티시에에게

by 최규성

제과는 공정이 철저히 규격화되어 있다. 정확한 무게와 온도 그리고 시간에 맞춰 결과를 재현하는 일이 가깝다. 그러다 보니 제과 작업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설명서를 보며 순서를 따라가는 조립식 작업과 닮아 있다. 정해진 배합과 공정, 온도와 시간 안에서 결과가 만들어진다. 몇 그램의 차이, 몇 도의 편차, 단 몇 분의 오차만으로도 전혀 다른 결과에 도달한다.


문제는 그런 작업이 반복되고 익숙해질수록, 맛을 판단하는 기준이 혀가 아니라 레시피가 된다는 점이다.


“배합대로 했다.”

“온도는 정확했다.”

“시간이 맞았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되면, 결과는 이미 스스로 정당화된다. 맛이 어딘가 밋밋해도, 향이 흩어져도, 여운이 짧아도 공정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공정이 기준이 되면, 맛은 부차적인 확인 절차로 밀려난다.


제과에서 맛은 마지막에 확인된다. 공정 중간에 맛을 보고 수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작업이 ‘공정에 문제가 없었는가’를 확인하는 데 머물고, ‘맛이 제대로 자리 잡았는가’를 찾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요리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맛을 본다. 간을 조절하고, 산미를 더하고, 불을 낮추며 중심을 잡는다. 맛의 초점을 찾는 과정이 공정 안에 포함되어 있다. 경험이 쌓일수록 맛의 초점은 더 선명해지고, 맛의 궁극으로 향해가는 감각은 점점 날카로워진다. 반면 제과는 맛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 공정 밖으로 밀려나 있다. 초기 설계 단계에서 놓치면, 공정 시작 후에는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


그 결과 제과는 기술적으로 점점 더 정교해지지만, 맛의 초점은 흐려진다. 질감은 완벽하고, 단면은 깨끗하며, 구조는 안정적이지만 한 입을 먹었을 때 기억에 남는 포인트는 희미하다. 모든 것이 맞는데, 아무것도 날카롭지 않은 상태.


감각은 사용하지 않으면 둔해진다. 반복 재현에 익숙해질수록 혀는 판단을 멈춘다. “원래 이런 맛”이라는 말이 기준이 된다. 레시피가 정답이 되는 순간, 변화를 꺼려하고 더 깊은 지점을 탐색하려는 시도는 줄어든다. 맛의 궁극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현재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제과 작업의 구조적 특성은 기술을 정교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맛을 향한 집요함을 약화시켰다.


제과도 결국 음식을 만드는 요리와 같다. 나만의 예쁜 작품을 만들어 사진 속에서 오랫동안 바라보는데 공예품이 아닌 결국 입으로 먹고 맛을 보는 음식이다. 제과가 작품처럼 다뤄질수록 우리는 시각적 완성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음식이라는 본질을 잊는 순간, 구조는 남아도 감동은 남지 않는다. 결국 제과도 요리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증명된다. 한 조각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떠오르는 맛의 기억, 그것이 존재의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 제과의 밀도가 더 깊어지려면, 제과사들은 더 많이 맛을 봐야 하고 그 감각을 키워야 한다. 공정은 반복으로 숙련되지만, 맛은 반복만으로 깊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재료의 차이를 직접 느끼고, 같은 배합이라도 미묘한 변화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체감해야 한다. 그래야 수치가 아니라 감각으로 설계할 수 있다.


결국 기술의 완성도는 손이 아니라 혀에서 결정된다. 감각이 쌓이지 않으면 정교함은 있어도 설득력은 생기지 않는다. 우리나라 제과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 더 예민한 미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직원들에게 손끝으로 반죽의 질감을 느껴보고 그리고 직접 혀로 맛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 감각의 경험은 결국 축적된다. 반복 속에서 얇게 쌓이는 것이 아니라, 밀도 있게 응축된다. 나는 그 축적된 감각이 한 사람의 깊이를 만들고, 그 깊이가 결국 제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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