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2시쯤, 아주머니의 아드님이 귀가하셨다. 워낙 늦은 시간이라 제대로 인사를 건네기도 애매해서, 나는 자는 척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어느덧 아침 7시. 조금 더 누워 있고 싶었지만, 보통 그 시간에 식사를 하신다는 말에 서둘러 일어나야 했다.
대충 씻고 나와서 어머니가 정성껏 빨아 말려주신 옷가지들을 배낭에 챙기며 짐 정리를 하는데, 아드님도 마침 일어나셨다. 참... 이런 상황에서 마주치는 건 정말 묘하게 어색하다. 나는 어제 그분의 귀가 소리를 분명히 들었고, 그 형님 또한 마루에 누워 있는 내 존재를 확인했을 터. 서로 알고는 있지만 정작 통성명 한 번 안 해본, 그야말로 '완벽한 초면'인 상태인 거다.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한 뒤 나오니, 아주머니께서 방울토마토와 우유를 내어주셨다. 우유만 한 잔 들이켰다. 아주머니는 이동하면서 먹으라며 삶은 달걀과 우유, 요구르트까지 꼼꼼하게 챙겨 배낭에 넣어주셨다. 문득 텔레비전에서는 오늘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잠시 거실에 앉아 아주머니와 아침 연속극을 시청한 뒤, 함께 집을 나섰다. 아주머니는 보내야 할 우편물이 있다고 하셨다. 가시는 길이 달라 우리는 그 길목에서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계룡산을 넘어 대전으로 향하는 루트다.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내 중심지를 벗어나 외곽 도로에 접어들자 길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한참을 걷다 길 위에서 차에 치인 어린 새 한 마리와 말라비틀어진 뱀을 발견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번 여행에서 마주치는 동물들은 어째 하나같이 한약방에서나 볼 법한 귀한(?) 것들뿐이다.
금강은 역시나 멋있었다. 내 머릿속에 박혀 있던 '강'이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뒤바뀐 날이다. 외곽 도로 보도블록에는 비 오는 날 외출했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말라죽은 달팽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여기서 달팽이를 밟는 건 그야말로 두 번 죽이는 일 같아,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지 신경 쓰였다.
공주대교를 통해 금강을 건너야 했기에 길을 걷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서더니 내게 길을 물어오셨다. 여행자인 내가 알 리가 있나. 대신 가지고 있던 지도를 보여드렸다. 대전을 거쳐 마산까지 가신다기에 대전까지 태워달라고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공주대교를 건너던 중, 길 위에서 생뚱맞게 피라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녀석이 대체 왜 여기 있는 걸까? 이 높은 다리 위까지 튀어 올라왔을 리는 만무한데...
금강을 건너고 얼마간 더 걷다 보니, 이대로라면 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았다. 결국 길가에 자리에 주저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안 되겠다 싶어 배낭 뒤에 ‘계룡산 태워주세요’라고 써 붙이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순간 무척 난감했다. 혹시나 요금을 내야 하는 상황일까 봐 우려했던 것과 달리, 다행히 아저씨께서는 가는 방향이 같다며 순수하게 호의를 베풀어 주셨다. 뒷좌석에는 할머니 한 분이 타고 계셨는데, 손님이라기보다 아저씨와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계룡산, 정확히는 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나를 내려주시고는 다른 방향으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나는 잠시 큼지막한 돌 위에 걸터앉아 배낭 뒤에 붙여두었던 '계룡산~' 문구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때 내 앞에서 은행을 구워 파시던 아주머니께서 호기심 어린 눈길로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자녀분들이 유럽에서 공부 중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나도 곧 프랑스로 떠날 예정이라고 대답해 드렸다. 짧지만 기분 좋은 대화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식당가를 지나치다 문득 아침에 본 뉴스가 떠올라, 탄핵 결과가 나왔는지 주인아저씨께 여쭈었다. 아저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답해주셨다. 이윽고 도착한 매표소. 사정을 정중히 말씀드리니, 검표원분께서는 "원래는 요금 내야 하는 거 알죠?"라며 넌지시 강조하시더니 이내 들여보내 주셨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잠시 화장실에 들러 몸을 가볍게 비워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갑사가 나타났다. 한 바퀴 둘러보았으나, 솔직한 감상은 ‘생각보다 그리 볼 건 없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곧장 본격적인 등산에 나섰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제법 근사한 풍경을 선사해 주었고, 그 경치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힘든 줄도 모르고 산 중턱에 다다랐다.
올라가는 길에 단체 등산객들과 마주쳤는데, 그중 한 분이 본인도 예전에 무전여행을 해본 적이 있다며 반갑게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나도 이런저런 대답을 해드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고장 난 카메라가 떠올라 대전에서 수리가 가능할지 여쭈었다. 아저씨는 대전역 근처에 가면 카메라 수리점이 많으니 걱정 말라고 귀띔해 주셨다. 고맙게도 먹을 것을 챙겨주려 하셨지만, 지금 내게는 그마저도 무거운 짐이 될 것 같아 정중히 사양했다.
그렇게 도착한 금잔디 계곡. 이름과는 달리 막상 마주한 풍경은 '뭐가 금잔디라는 건지' 싶을 정도로 평범해서 조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제대로 휴식을 취해볼 생각으로 양말까지 벗어던졌더니, 기다렸다는 듯 파리 떼가 내 주위로 들끓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그렇게 파리와 함께하는 ‘치열한’ 휴식을 마치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남은 건 하산뿐이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남매탑’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탑 하나가 나타났다. 탑 주위에는 많은 등산객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 정겨운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아침에 아주머니께서 챙겨주신 계란을 꺼내 들었다. 사실 속으로는 ‘이런 액션을 취하면 누군가 먹을 걸 나눠주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기대도 살짝 품었는데, 기대감이 부풀기도 전에 아까 마주쳤던 아저씨 일행 중 한 분이 도시락 하나가 남는다며 선뜻 내어주셨다. 염치 불고하고 김밥을 맛있게 얻어먹은 뒤 짐을 정리해 다시 출발하려는데, 이번엔 어떤 형님 한 분이 참외와 포도를 건네주셨다. 내가 단체 여행객들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 먹을걸 잘 나눠주신다. 참외는 고이 배낭에 챙겨 넣고, 큼직한 거봉은 하산길의 간식 삼아 하나씩 입에 넣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고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올라갈 때는 숨이 차고 체력이 바닥난다면, 내려올 때는 매 순간이 위험의 연속이고 발목과 무릎에 전해지는 묵직한 압박감이 정말 괴로웠다. 특히 큼지막한 배낭까지 짊어지고 있으니 발에 가해지는 무리가 한층 심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나 발을 접질려 고꾸라질 뻔한 위기를 넘기며, 정말이지 온 신경을 발끝에 집중해야 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커녕 작은 찰과상 하나 없이 무사히 산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려온 김에 동학사도 들러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가야 할 길과는 반대 방향인 데다 심지어 또 오르막이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미쳤다고 그걸 보러 다시 기어 올라가겠나.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공원을 벗어나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내 배낭에 붙은 ‘무전여행 중’이라는 문구를 보셨는지, 한 여성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여느 때처럼 이어지는 질문들에 담백하게 답을 해드리며 길을 함께했다. 대화 중에 자연스레 동학사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보지 않았다는 내 말에 누님은 차라리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지금 한창 공사 중인 데다 예전보다 너무 세속적으로 변해버려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여행 중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잠자리 구하는 일이라 답했다. 그러자 누님은 나중에라도 잠자리를 못 구하면 연락하라며 선뜻 본인의 연락처를 적어주셨다. 심지어 내가 대전역까지 가야 한다는 걸 아시고는 버스비까지 대신 내주셨다. 누님과 함께 버스에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유성. 집이 이 근처라며 내릴 채비를 하시는 누님께, 나는 감사의 표시로 아까 받은 참외를 선물(?)로 건네드렸다.
나는 그대로 버스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해 곧장 근처 사진관부터 찾았다. 마침 국가자격증까지 보유했다는 신뢰감 넘치는 사진관이 눈에 들어와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께 카메라를 보여드리며 어디가 문제인지 여쭈었더니, 기기를 이리저리 살펴보시던 아저씨는 수명이 다했다는 사형 선고를 내리셨다. 고쳐 쓰는 것보다 버리는 게 나을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드리고 나와 길 위에서 이 고물 카메라를 어쩌나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새 카메라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일하시는 중이라 길게 통화하지는 못했고, 내일 다시 연락하기로 하며 전화를 끊었다.
우선은 대전역사 안으로 들어가 대전 시내 지도를 한 장 구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지도를 펼쳐놓고 대전의 지리를 대충이나마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특별히 가볼 만한 곳이 어디인지 훑어보던 나는 다시 유성으로 방향을 틀기로 결심했다. 그곳엔 월드컵 경기장도 있고, 무엇보다 여차하면 아까 연락처를 주신 누님의 호의에 기댈 수도 있다는 든든한 보험이 있었으니까. 가는 길목에 있는 도산서원도 한 번 들러볼 겸, 나는 다시 유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걷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다른 사진관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이곳 주인아저씨 역시 수리비가 새로 사는 값보다 더 나올 거라며, 차라리 하나 장만하는 게 낫겠다는 같은 답을 내놓으셨다. 그러더니 아저씨께서는 본인의 카메라를 빌려줄 테니 여행이 끝나면 소포로 돌려달라는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낯선 여행자에게 선뜻 귀중한 물건을 내어주시려는 호의가 정말 감사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의 부담이 커 정중히 사양하고 인사를 드린 뒤 가게를 나왔다. 나오는 길에 정들었던 고물 카메라를 그곳에 맡기고 왔다. 내가 직접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것보다는, 전문가인 사진관 주인분께서 부품이라도 활용하거나 처분하시는 게 훨씬 실용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는 수고까지 했건만, 서원은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도 않은 채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제대로 된 구경 한번 못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어느덧 주위는 어둑어둑해졌고,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유성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곧장 누님에게 전화를 할까 싶었지만, 우선은 내 힘으로 잠자리를 구해보는 게 맞는 거 같아 교회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늦은 시간 탓인지 교회들은 하나같이 불이 꺼진 채 문이 잠겨 있었다. 낮부터 이어진 계룡산 산행에 대전 종주까지 겹쳤으니, 몸에 힘이 남아날 리 만무했다.
결국 어느 오토바이 가게 문턱에 풀썩 주저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까 적어주신 번호를 한 자 한 자 확인하며 꾹꾹 누른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누님이 전화를 받으셨고, 염치 불고하고 하룻밤 신세를 부탁드렸다. 한참 위치 설명을 나누던 중, 갑자기 남편분이 전화를 건네받으셨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아까 하산길에 들었던 기억이 스쳤기 때문이다. 남편분의 직업은 다름 아닌 직업군인! (편하게 '형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긴장한 내 마음과는 달리 형님은 무척 친절하게 아파트 위치를 알려주셨고, 나는 길을 물어물어 겨우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집 앞에 다다르니 이미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형님과 누님, 그리고 아이까지 온 가족이 나와 낯선 여행자인 나를 반겨주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샤워부터 마쳤다. 몸을 씻어내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간단히 빨래를 해서 방안에 대충 널어두었는데, 누님이 보더니 탈수를 안 하면 금방 안 마른다며 가져오라고 하셨다. 빨랫감이라 함은 나의 지극히 '은밀한 속옷'을 포함하는 것이었으나, 나는 애써 당당한 척 양말과 함께 세탁물을 건네며 탈수를 부탁드렸다.
식탁에 오르니 정말 끝내주는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한 그릇을 비우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구석에 놓인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무전여행을 시작한 뒤로 한동안 만져보지 못한 악기라 무척 반가웠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는지 튜닝이 엉망이었고, 어설픈 솜씨로 줄을 주물럭거리며 소리를 맞춰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 형님이 방으로 들어오셨다. 사실 처음에는 '직업군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강인하고 딱딱한 이미지만 떠올렸는데, 막상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보니 인상이 상당히 부드러우셨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묘한 압박감 때문인지, 말투를 어떻게 써야 할지(다나까를 써야 하나?) 속으로 꽤나 고민했다. 그렇게 긴장 섞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기타 줄을 매만졌다. 신기하게도 형님이 대화를 마치고 방을 나가시자마자, 그토록 애먹이던 튜닝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오랜만에 잡은 기타였지만, 막상 연주를 하려니 손가락이 기억하는 노래가 하나도 없었다. 결국 기타를 조용히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마침 눈에 띈 건 책장에 꽂힌 『주말여행』이라는 책이었다. 페이지를 넘겨가며 다음 여정에서 가볼 만한 곳들을 꼼꼼히 체크했다. 그렇게 짧은 탐색을 마치고 기분 좋은 피로감 속에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