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대학교 1학년, 인문대 신입생이었던 나는 니체에 심취해 있었다. 당시 내 삶을 관통하던 문장은 종이에 적혀 곱게 접힌 채 지갑 속을 지켰다.
"인간은 극복되기 위한 그 무엇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그는 인간이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 같은 존재라고 했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우리가 미완의 상태라는 불안감 대신, 생의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읽었다. 그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었다. 어제의 나를 기꺼이 배반할 수 있는 용기, 내가 원하는 존재로 나를 빚어낼 수 있는 날 선 의지를 뜻했다.
그러던 시절,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동기가 생일 선물로 <소금꽃나무>라는 책을 건네주었다. 도끼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소금꽃을 피워내는 이들의 삶을 처음 마주한 후, 나는 동기가 부르는 모든 자리에 나갔다. 집회 현장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도, 밤새 이어진 뒤풀이 술집의 눅눅한 공기 속에도, 이름 모를 먼 지방의 투쟁 현장에도 언제나 내가 있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을 향한 의지는 그렇게 타인의 삶과 연대하려는 뜨거움으로 번져나갔다.
4학년이 되자 우리는 저마다의 생존을 위해 흩어졌다. 하지만 늘 누군가와 죽도록 싸우고 싶었던, 무엇보다 뜨거웠던 나의 젊은 날은 여전히 내 곁을 맴돈다. 빨래를 널다가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터져 나오는 노래처럼 말이다.
특별하지도, 눈부시게 빛나지도 않았던 그 투박한 시절이 왜 자꾸 생각나는 걸까. 모두의 기억은 제각각이고, 저마다의 청춘은 그 자체로 아팠을 것인데 말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그 시절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다.
아마도 그때 우리의 이십 대에는 누구나 자기 안에 춤추는 별이 있었고, 그 혼돈 속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살아있었던 시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그때엔 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며 함께 했지
인간이 인간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향해 함께 했지
허나 젊음만으로 어쩔 수 없는 분노하는 것만으론 어쩔 수 없는
생각했던 것보단 더 단단하고 복잡한 세상 앞에서 우린 무너졌지
이리로 저리로 불안한 미래를 향해 떠나갔고 손에 잡힐 것 같던 그 모든 꿈들도 음~ 떠나갔지
허나 친구여 서러워 말아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으니
후회도 말아라 친구여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을
젊음은 흘러가도 우리 점점 늙어간다 해도
우리 가슴속 깊이 서려있는 노랜 잊지 말게
노랜 잊지 말게
(꽃다지, 당부)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이 노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나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투사는 아니었다. 어쩌면 지식인이라는 알량한 정체성이 만든 부채감, 혹은 누군가를 향한 막연한 동정심이 나를 그 거리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돈의 가치를 부정하고 싶지도, 노력과 능력에 따라 위계가 나뉘는 세상의 질서를 비판하며 힘을 빼고 싶지도 않다. 모든 것이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세상에서, 나의 치기 어린 정의감은 때로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입안에 씁쓸하게 남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갈증이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 그것이 나의 20대를 관통했던 단 하나의 문장이자, 지금껏 가슴 한구석에 간직해 온 유일한 진심이다.
이제 나는 내 아이에게 이 투박한 진심을 건네려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일종의 선들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굳이 이 글에 다 적지 않아도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차별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 모든 차별과 부조리를 당장 없앨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좋은 사회’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 보자고 말해주고 싶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다. 너와 내가 사는 방식으로, 세상을 1mm라도 더 나은 쪽으로 밀어 올려보자고.
나의 뜨거웠던 젊은 날은 이제 철 지난 노래로 남았지만, 그 노래가 남긴 '인간다움'의 가치만큼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나의 일상 속에서 계속될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서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까지 살다 가지
내겐 작은 꿈이 있어 그대 여린 가슴에 들어가 그대 지치고 외로울 때 위로가 되려 해
때론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대 행복할 때 때론 그 사랑이 너무 아파 눈물질 때
때론 지난 세월이 그리워 그대 한숨질 때 그렇게 나 언제라도 그대와 함께 하려네
한땐 나와 나의 동료들은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의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어 거리에서 온 땀으로 그들과 함께 했지
그땐 그대들과 난 아름다웠어 비록 미친 세월에 묻혀 사라진다 해도
다시 한번 그대 가슴을 펴고 불러준다면 끝까지 함께 할 테요.
(꽃다지, 노래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