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남는 건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처음으로 ‘집회’라는 낯선 풍경 속에 던져졌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나를 움직인 건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얄궂게도 처음 느껴 본 설렘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갓 입학한 대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사실 어디에도 섞이지 못한 채 둥둥 떠 있었다. 집에서 도망치듯 나온 대학 기숙사의 이층 침대. 밤마다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가 주는 용돈으로 사 먹는 맥주 냄새를 풍기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전공은 나와 맞지 않는 듯 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질문은 너무 무거워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동그랑 얼굴에 뿔테안경을 쓰고 키가 컸던 동기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야, 시내 구경 갈래?” ‘시내’라는 단어가 주는 낯선 어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순간, 거울 속의 내 모습을 훔쳐보았다. 혹시 이거 데이트 신청인가? 나는 녀석의 속도 모르고 옷장 깊숙이 넣어둔, 가장 아끼는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청바지에 후드티만 입던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기숙사 룸메이트가 골라준 원피스였다. 데이트답게 맛있는 파스타도 먹고 영화도 보려나, 혼자 상상하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영화관이 아니었다. 백화점 앞 광장. 활기차야 할 거리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바닥에는 팝콘 대신 사람들의 땀 냄새와 쉰내가 진동했다. “우리 여기 잠깐만 앉았다 가자.” 녀석은 내 샤랄라한 원피스 차림은 관심도 없다는 듯 아스팔트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엉겁결에 따라 앉은 내 옆에는 장사판을 채 걷지 못한 아주머니가 멍하니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끈적한 습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아니, 이 녀석한테 속았다는 생각에 배신감도 들고 화가 났다.
그때였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형광 조끼를 입은 사내들이 들이닥친 건. 광장의 습한 공기가 한순간에 고열을 일으키며 찢어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고, 쇳소리와 욕설이 뒤섞였다. 2008년 여름, 노점상 강제 철거 현장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이 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이러지 마세요! 사람 다쳐요!”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인지도 몰랐다. 누군가 내 앞의 아주머니를 거칠게 밀쳤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 몸을 끌어안았다. 와르르. 좌판이 엎어졌다. 아끼던 흰 샌들 위로 시뻘건 떡볶이 국물과 튀김 부스러기가 쏟아졌다. 고소해야 할 기름 냄새가 비릿한 피 냄새처럼 역하게 느껴졌다. 뭉개진 순대, 바닥에 나뒹구는 고무대야, 그리고 내 팔을 생명줄처럼 꽉 쥐어뜯던 할머니의 거친 손톱. 그날 내 ‘첫 데이트인 줄 알았던 내 설렘’은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이후에도,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동기 녀석과 선배들에게 연락이 오면 딱히 거절할 핑계를 찾지 못해 나갔고, 어느새 나는 연락이 오면 ‘불려 가는 사람’에서, ‘당연히 거기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운동권’이라 불렀지만,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나를 그 거리와 그들의 곁에 붙잡아 둔 건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이론, 신념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학교 앞 허름한 주막에 모여 앉으면, 막걸리 냄새와 사람 냄새가 섞여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가족 하나 없이 타지에 홀로 나와 있는 나를 살뜰히도 챙겨주던 선배의 자상한 웃음, 남자친구도 침범할 수 없었던 그 동기 녀석과 나의 끈끈함.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대사처럼, 나는 그들 앞에서 "더 나은 사람(Better man)"이 되고 싶었다. 쪽팔리기 싫었고, 의리 있어 보이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 따뜻한 틈에 끼어 있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 자신의 불안을 그 현장의 열기로 덮어버리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투쟁은 세상의 모순과 싸운 것이 아니라, ‘비겁한 사람이 되기 싫다’는 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정책도, 도시 계획도 몰랐다. 그저 짓이겨진 떡볶이와 울고 있던 할머니의 얼굴, 그 구체적인 슬픔만이 나를 붙들었을 뿐이다.
졸업이 다가오자, 그토록 뜨겁던 마음에도 찬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나.’ 친구들이 취업 스터디를 하러 도서관으로 향할 때, 나는 슬그머니 집회 공지 문자를 못 본 척했다. 뉴스 속 투쟁 현장을 보며 혀를 차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점점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뒷걸음질 쳤다.
지금의 나는 전업주부가 되어 디카페인 커피를 홀짝 거린다. 가끔 창밖으로 건설현장 확성기 소리가 들려오면, 미간을 찌푸리며 창문을 닫는다. 소음이 차단된 고요하고 쾌적한 실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이 안온함이, 내가 그토록 도망쳐 도착한 곳이다.
나는 이제 안다. 도시의 질서라는 것이 누군가의 삶을 밀어내고 만들어진 매끈한 표면이라는 것을. 나는 그 표면 위에서 안전하게 미끄러지듯 살고 있다. 다만, 가끔 욱신거리는 기억들이 나를 찌른다. 나의 현재가 그때 그들의 패배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가 하는 부채감. 그것은 닦이지 않는 얼룩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가끔 꽃다지의 노래 「이 길의 전부」를 듣는다. 그러면 나는 시내 한복판, 떡볶이 국물로 얼룩진 샌들을 신고 멍하니 앉아 있던 스무 살의 나를 만난다. 그때의 내가 세상을 바꿨을까? 아니,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나는 무력했고, 미약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끝내 그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지는 않았다는 사실.
그 기억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대단한 결론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한때 그곳에, 그 뜨겁고 냄새나던 거리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가장 솔직한 형태로 증명하고 있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전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쓴 커피를 삼킨다. 그 시절의 촌스럽고 서툴렀던 내가, 지금의 매끈한 나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서.
<이 길의 전부 - 꽃다지>
좋은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전부
우리 시작도 좋은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
그것을 꿈꾸었기 때문이죠
아무리 내 앞길이 험해도
그대로 인해 내가 힘을 얻고
슬픔도 그대와 겪으니
나도 따라 깊어지는데
언제나 당신에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커지고 맑아져
그대 좋은 벗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