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사고뭉치야 2
정말이지 아무런 계획 없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원래가 치밀한 성향도 아니거니와, ‘크리스마스 아이와 가볼 만한 곳’을 검색했을 때 마주할 오조오억 명의 인파 속에 섞여 기를 빨릴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딱히 종교도 없으니 매년 우리 집 성탄절 선택지는 늘 한결같았다. ‘집에 있거나, 더 격렬하게 집에 있거나.’
그런데 올해는 유독 집콕이 지겨웠다. 남편은 남은 연차를 영혼까지 끌어다 썼지만, 딱히 갈 데가 없어 며칠째 흔들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답답함이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내가 용감하게, 혹은 정신이 나간 듯이 외쳤다.
“그럼 사람이 아예 없는 데로 나가면 되잖아!”
그 한마디에 크리스마스 '겨울 산행'이 결정됐다. 봄, 가을에도 담을 쌓고 지내던 산을 성탄절에 오르기로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객기 어린 결정의 여파로 아이는 오늘 학교 대신 이불 속을 택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명색이 축제날인데 아침부터 대충 토스트를 내밀긴 양심에 찔리고, 한상을 차리자니 귀찮음이 앞서 만만한 닭곰탕을 끓였다. 뜨끈한 국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기세는 좋았다. 멀리서 보면 참으로 단란한 가족이었을 테다. 하지만 실상은 준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부부의 대책 없는 육아기였다.
최소 두 시간은 칼바람 속에 서 있어야 하는데, 신발장에 쌓여있는 핫팩은 왜 안 챙겼으며, 장갑과 모자, 따뜻한 물을 담았어야 할 보온병은 왜 식탁 위에 얌전히 놓아두고 왔을까. 주인을 잘못 만난 덕분에 따뜻한 실내에서 성탄절을 보냈을 물건들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산을 오르다 말고 문득 '부모 노릇'이 하고 싶어졌다. 산 아래에 두고 온 이성 대신 뒤늦은 교육열이 발동했는지, 남편과 나는 번갈아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필 이 시점에 말이다.
“3학년 되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우리 딸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삶의 목표 같은 거 말이야."
진지한 내 질문에 아이는 입 근육이 얼어붙은 채 대답했다.
“그냥 친구들이랑 더 잘 노는 게 목표야! 질문 좀 그만해, 엄마. 추워 죽겠어!”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입술은 이미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부모는 고결한 가치를 묻는데 아이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그야말로 ‘동상이몽’의 현장이었다.
산 중턱에 다다르자 공기의 질감이 바뀌었다. 볼은 땡땡하게 굳고 손끝은 아리다 못해 타는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힐끔힐끔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 눈이 마주친 순간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우리 여기 왜 왔냐? 진짜 얼어 죽겠다!”
그 와중에 아이는 발가락에 감각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제야 발끝을 보니, 세상에. 아이는 매쉬 소재로 된 구멍 숭숭 뚫린 여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알아서 잘 신었겠거니 방치한 부모의 업보였다. 성탄절의 인파를 피하려다 한파라는 거대한 벽에 정면으로 충돌했음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이상하게 사람이 없더라니, 그때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한파 경보: 노약자 외출 자제]. 남편과 나는 핸드폰 화면을 보고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내려가기엔 이미 늦었고, 올라가기엔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었다.
정상에 도착하니 아이를 데려온 집은 역시나 우리뿐이었다. 물병 속 생수는 이미 얼음 슬러시가 되어 있었다. 아이는 차가운 물을 마실수록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때 지나가던 어르신이 구원투수처럼 건빵 한 봉지를 내밀었다. 낯가림 심한 아이가 내 뒤로 숨어버리는 바람에, 나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애가 건빵을 안 먹어서요. 어르신 드세요!”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등을 툭 치며 웃으셨다. “요즘 애들이 이런 걸 먹겠어?” 할아버지는 “허허, 그런가. 맛만 좋구먼” 하시며 건빵을 입에 넣으셨다.
예의범절에 대한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억겁 같은 하산 시간을 버티고 나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이를 뜨끈한 욕조에 밀어 넣고 수면 잠옷으로 무장시켰다. 우유를 데우고 호빵을 쪄서 크리스마스 영화를 틀었다. 세 가족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목 끝까지 이불을 덮으니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저녁 식사는 아이가 일일 요리사로 나섰다. 동네 뷔페 대기가 200팀을 넘었다는 소식에 일찌감치 밀키트로 노선을 틀었다. 설명서를 탐독하며 파스타와 감바스를 만들어내는 아이 곁에서, 나는 화상 방지용 감시관 역할을 수행했다. 남편은 폭립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매장 분위기만큼은 아니어도, 지갑은 가볍고 배는 무거우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한참 호기를 부리던 아이가 밤이 되자 콧물을 훌쩍이기 시작했다. 목이 칼칼하다는 말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성탄절의 낭만을 산에서 찾으려 했던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주말을 무사히 보냈나 싶었는데, 오늘 아침, 아이는 이상하게 몸이 춥다며 맑은 콧물을 줄줄 흘리며 일어났고, 체온계를 재보니 38도를 훌쩍 넘겨 등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의 고열이었다.
오조오억 명의 사람 구경 대신 셋이서 오붓하게 콧물 구경을 하게 된 셈이다. 그래도 아이는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와중에도 크리스마스에 먹은 감바스가 최고였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병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생각했다. 완벽하게 망해서 더 완벽하게 기억될, 우리 집다운 성탄절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