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열 살인 아이는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옷장 문을 열고는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대고, 등굣길에 보이는 시꺼먼 옷을 입은 아이들 무리, 마치 ‘개미 군단’처럼 보이는 고학년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입학할 때 큰마음먹고 사 준 십오만 원짜리 보라색 책가방은 어느새 창고 구석으로 밀려났다. 조그맣고 어리기만 했던 내 아이의 유년이 그 가방과 함께 창고로 들어가 버린 기분이다.
감정은 이유 없이 넘쳐흐르고, 아이는 그걸 감당하지 못해 자주 무너진다. 내 말 한마디에 서운하다며 울다가도, 내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한숨을 쉬며 머리를 부여잡으면 “왜 나 죄책감 갖게 만들어!”라고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피아노를 치다가 울고, 책을 읽다가도 운다.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화를 내고,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가와 친절을 베푼다. 황당하고 억울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 감정의 널뛰기가 왠지 낯설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호르몬에 휘둘려 미친 듯이 초콜릿을 찾으며 감정의 노예가 되어 날뛰던 내 모습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소설 『오 백 년째 열다섯』 속 남자 주인공에 푹 빠져,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등 뒤로 굳이 달려와 로맨틱한 대사를 읊어주기도 했다.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내일이 기다려지고 궁금해졌어. 그래서 나한테 내일은 너야. 엄마, 엄마. 신우 같은 남자를 만나야 해. 아, 너무 로맨틱하지 않아? 낭만적이야.”
이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며 책에 얼굴을 파묻고 수줍어하는 아이를 보며 웃음이 나다가도, 나는 아이의 ‘내일’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잠자리 인사를 하러 간 불꺼진 방에서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엄마, 나는 더 자라기 싫어. 내 마음은 아직 아기인데, 왜 벌써 열 살이야? 나이 먹는 거 무서워.”
“그럼 너도 피터팬처럼 네버랜드로 가서 영원히 어린이로 살고 싶어?”
“그건 싫어. 엄마가 예전에 피터팬은 애들 납치하는 유괴범이라고 했잖아.”
서로 빵 터져 큭큭 웃으며 대화는 끝났지만, 아이의 말은 어른이 되기 싫다는 투정이라기보다 지금의 자신을, 그동안의 모습을 놓아두고 새로운 나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처럼 보였다.
아이의 사춘기를 지켜본다는 건 아이의 변화만을 보는 일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나 자신의 시간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아이가 거울 앞에서 자신만의 멋을 찾아가는 시간만큼, 나 역시 아이를 조금씩 멋지게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금씩 아이와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피터팬처럼 이대로 영원히 멈춰 있고 싶은 아이의 마음과, 조금씩 자라 홀로 설 준비를 하는 낯선 아이의 모습까지.
열 살의 아이도, 스무 살의 아이도 나는 변함없이 사랑하겠지만, 사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조금 두렵기도 하다.
아이는 자라고 있고, 나는 그 엄청한 속도를 매일 목격하고 있다. 두렵고 서글프지만, 이제는 아이가 읊어준 소설 속 대사를 믿어보기로 한다.
나에게도 내일은 분명 너일 테니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안아주며, 각자의 마음 공사 현장을 씩씩하게 지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