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처럼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모순
세종대왕 때 영의정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황희이다. 요즘은 고기 좋아하는 악덕업주에게 붙잡혀 죽기 직전까지 은퇴도 못 하고 부려 먹힌 인물로 회자가 되지만, 그것도 사실 황희라는 인물이 능력이 뛰어나다는 방증 아닐까. 조선 최장기 영의정 역임. 90세라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로서는 놀랍도록 장수(長壽)한 인물. 세종대왕이라는 걸출한 군주의 뛰어난 치세를 받쳐온 하나의 당당한 축. 몇 가지 흠결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 희대의 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그만큼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누가 뭐라고 말해도 그저 '네가 옳다'라고 한 일화도 유명한 편이다. 심지어 두 사람이 서로 상반되는 얘기를 해도 둘 다 옳다고 해서 듣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힘을 과시(?)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살면서 보면 황희 정승의 옳다는 말 "역시 옳다." 옳을 때가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더 "칼 같은" 사회이다. 딱 떨어지는 자연법칙이 수도 없이 많다. 수학적, 과학적 계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보다 더 발전하고 있는 IT, AI 등의 세계도 사실 0과 1이라는, Yes 아니면 No라는 이진법에서 출발하지 않는가. 맞으면 맞는 것이고, 틀리면 틀린 것이다.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에 아주 익숙하다.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이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우리 머릿속에 더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이 우리의 생활에 100% 지분을 가져갈 수 있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그 비중은 점점 늘어나겠지만 100%가 될 날이 앞으로라도 올까?라는 물음에도 나는 역시 회의적이다.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맞으면서도 틀리고 틀리면서도 맞는 사례. 우리가 모순(矛盾)이라고 부르는 상황은 조금만 생각해도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똑같은 말을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상황에서 한다고 하자. 그래도 개그맨이 하면 웃길 수 있고, 일반인이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 말은 웃기면서도 웃기지 않은 말이 된다.
황희 정승 일화에서 "둘 다 옳구나." 하는 상황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양자의 진술이 다 일리가 있을 때. 심지어는 그 두 진술 모두 사실에 기반할 때. 그 때라면 황 정승이 아니라 누구라도 둘 다 맞는 말을 한다. 그래서 헷갈린다. 이런 소리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된다.
아직도 자연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 역시 많다. 그런 현상들은 100% 옳은 것이고 저것은 100% 틀린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이외에도 모순되는 상황은 굉장히 많은데, 물론 그중 대부분은 알고 보면 모순이 아니다. 얼핏 보기에 모순처럼 들릴 뿐, 실상은 일관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법칙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칼 같은 세상이지만 아직 완벽한 칼은 아니다. 그리고 그 칼은 웬만해서는 완벽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말은 아직 그 생명력을 잃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아 숨 쉴 것이다. 마냥 한쪽으로만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런 유연한 상상력. 이 상상력이 얼핏 보기에는 비효율적이지만 알고 보면 이 복잡한 세상에 있어서는 더욱 효율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