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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06. 2024

도덕률[도덕의 근본 원리]
[2] 자아실현

본질 발현(發現){펼쳐 보이기} 

본질발현(發現){자아실현}



본질 발현 실마리●


발현의 뜻

발현이란 사물 속에 들어있는 “심신의 역할과 기능” ―합쳐서 기능이라고 부를 것임― 을 현실적으로 펼쳐 보인다는 뜻이며 따라서 본질 발현이란 사물의 본질 속에 들어 있는 기능{〘행동성〙}을 현실에서 펼쳐내 보인다, 곧 실현시킨다는 뜻이다. 


행동성에는 몸의 행동성과 마음의 행동성이 있고 마음의 행동성에는 정신의 행동성과 본능의 행동성이 있으며 도덕에서는 정신에 딸려있는 정당성{정의}의 발현이 먼저다. 그 다음에 정신의 다스림을 받는 본능의 행동성인 이로움의 발현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利)로움]이라는 개념을 쉽게 직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전에서 이에 관한 풀이를 보면 [이(利): 이롭다 ∙ 이득 ∙ 이득이 되다] 등으로 같은 뜻 되풀이가 대부분이다. 그 뜻이 너무 넓고 직감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자면 이(利)는 심신의 본질 발현 ―또는 〘긍효로움〙― 을 가리킨다. 따라서 정신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전제 아래에서의 본능의 본질 발현을 “긍효롭다.”거나 “이롭다.”라고 나타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하겠다.  

    

본질 발현은 의지자인 행동 주체로서의 자기와 행동 객체로서의 다른 생명체, 특히 의지적 존재인 사람이 지닌 본질적인 행동성을 실현시키라는 내적 명령이며 지시이다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자아 실현]이라는 개념에 관해 초드는 일이 흔한데 자아실현은 바꿔 말해 본질의 발현이다. 자아실현이란 “자기 본질의 행동성을 행동으로 펼쳐 보임, 곧 현실에서 실현시킨다.”는 의미 밖의 말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자아실현은 “자신의 속안에 잠겨 있는 소질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상수리라는 질료 속에는 참나무가 될 형상{가능태}이 잠겨 있고, 따라서 상수리가 자라서 참나무가 되는 것은 잠겨 있던 형상이 떠올라 자기를 실현한 상태이다. 이 상태, 곧 엔텔레케이아(entelecheia)는 가능성으로서의 질료가 형상과 결부하여 현실성을 손아귀에 잡아 든 상태로 드러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자아실현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 비유를 본질 발현에 대응시킨다면 자아실현은 바로 본질 발현이므로 [본질]이란 “참나무가 될 잠재성의 상수리”이고 이 “상수리의〘행동성〙인 ”자라남“을 펴서 참나무로 나타내는 것”이 [발현]인 셈이다.



다른 의지자{}의 발현


행위에는 그 행위를 수행하는 행위의 당자(當者{〘가행자〙})인 자아[나]와 그 행위의 영향을 받는 남[타자(他者){〘피행자〙}]이 있다. 곧 앞에서 초든 바 있듯이 [남]은 행동 주체에 대해서는 행동의 대상이며 〘행동 역할〙상으로는〘행동 객체〙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행위에는 행위의 주체[나]와 객체[남]가 있다. “발현해야 한다.”는 지시는 행동 주체에게 적극적인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발현하여야 한다.”는 자동사적 표현이 나타내듯이 이 명령은 행동 역할 가운데 [행동 주체]에만 적용할 수 있는 뜻이다.      


자동사적 표현인 “발현하다.”는〘행동 주체〙가 자기의 본질에 들어있는 행동성을 펴낸다는 뜻일 뿐 주체인 자아(自我)가 자기의 의지와 관련 없는 그 밖의 행동 역할 대상들, 곧〘행동 객체〙인 남{타자}과〘행동 자체〙및〘행동 도구〙의 본질을 반드시 적극적으로 발현시켜 줄 수 있거나, 발현시켜 주어야 할 대상일 수 없다. 


이 표현은 행동 주체 밖의 행동 역할에는 알맞지 않다. 


그들은 다만 행위 주체의 행위에 따라 영향을 받는〘피행자〙적 대상{[행동 대상]}일 뿐이기 때문에 “발현하여야 한다.”라는 표현에는 적용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곧 행동 주체 밖의 행동 역할에 대해서는 “발현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당위적 표현 대신 “발현되다.”라는 관찰자 입장의 타동사적 비 당위적 표현을 써야 맞다. 


바꿔 말해〘행동 주체〙이외의 사물에 대한〘본질 발현〙에서는 소극적인 명령을 내리는 데 그칠 수밖에 없는 적용의 한계와 조건이 있다.      


행동 주체가 [행동 대상] ―다만 행동 자체 가운데에 행동 주체와 연관되는 부분을 뺀 나머지― 의 본질을 발현시켜 줄 책임이나 의무를 지려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남에 대한 〘침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의 본질은 남의 주체성에 맡겨야 한다. 


남의 본질을 “발현시켜 주어야 할 당위성”은 예컨대 대상인 [남]의 요청이 있는 경우처럼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짐을 지워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뿐만이 아니라 유한한 존재인 행동 주체가 특별한 관계 ―혈연  • 계약 그 밖의 "밝히거나 말 없는"(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긍정적 관계 등― 로 맺어지지 않은 한, 셀 수없이 많은 행동 대상의 관계 사물” 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닫혀있는 본질적 행동성 ―예컨대 상수리 속의 참나무― 을 일일이 싹을 틔워{발현시켜}―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가 있겠는가? 


본질 발현은 행동 주체인 자기의 행위에 국한되어야 하며 남의 본질은 다만 그 본질 자체에 합당한 [형태]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밖의 사물들, 곧 [행동 대상]에 관해 행동 주체가 취할 발현의 형태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마땅할까? 필자는 이에 관한 의미를 부여하는 갈말로 “배려하다”  • “대우하다”  • “마주하다.” 등을 떠 올린다. 이 낱말들의 뜻은 대강 다음과 같다.      


배려하다대상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많이 쓰다. 이 말은 대상 사물에 관한 마음을 적지 않게 기울여 주는 적극적인 뜻이 들어 있어 〘중용〙을 잃은 모습{치우침}으로 보일 수도 있다.

대우하다대상을 만나 그의 본질에 걸맞는 한에서 마주해 주다. 

마주하다마주 대하다  • 마중하다선입견이나 긍 부정 등을 마음에 두지 않고〘중용〙의 무심한 태도로 대상 그 자체에만 “의식하고{지(知)}해 나가고{의(意)} 느낀다{정(情)}”.  

    

“마주하다.”란 일단〘행동 객체〙로서의 다른 생명체, 특히 의지적 존재인 사람 및 다른 생명체〘관계 사물〙들이 지닌 본질적인 행동성의 발현이 “역할에 걸맞는 대접을 받음”이라는 뜻으로 여길 수 있다. 다시 말해 근본 원리가 지시하는 것은 “행동 주체와 연결되지 않은 사물들의 본질 발현”과 그 밖의 “관계 사물을 “마중하다.”라고 나타내는 것이 알맞지 않을까 여긴다. 

     

필자는 이처럼 남의 행동성을 침훼하지 않고 다만 발현을 맞아 뿐인 상태를〘마중이라고 부르려 한다. 마중의 사전적 의미는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하다.”이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사람”의 범위를 모든 의지적 대상 사물로 넓혀 쓰면서 “마중”을 “마주 대하다”의 명사형으로 보아 “대상들을 그 대상의 격에 걸맞게 맞아주거나 대우하거나 격에 걸맞는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쓰려한다. 


그러나 대상을 일일이 밝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거나 번거로울 때에는 행동 역할의 구분 없이 다 같이〘발현〙또는〘본질 발현〙이라고 쓰겠다.      


행동 주체적 관계 사물이 자기의 본질을 발현함이 타당함은 더 논의할 필요도 없다. 도덕의〘근본 원리〙는 이처럼 관계 사물의 본질적 발현과 마중하기를 지시한다고 해석된다. 자아에게 남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발현시킬 책임이나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침훼하지 말고 다만 본질에 합당하게 마중할 의무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행동 객체〙뿐만 아니라 다른 행동 역할인〘행동 자체〙나〘행동 도구〙에서의 의지적〘관계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본질에 관해서는 일단 ⓐ그 본질에 대해 마중하거나 ⓑ본질의 발현을 침훼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본질 발현과 마중의 중요 내용●


무엇을 펼쳐 보이는가?

본질 발현은 자기의 본질을 펼쳐 보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펼쳐 보인다는 말인가? 이를 구체적으로 적어 보겠다.      


자아실현자아실현이란 의지적 존재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기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것으로 따라서 본질 발현이란 자아실현이며 바꿔 말해 자아실현이란 본질 발현이다. “본질을 발현한다.”는 것은 관계 사물에서 의지자인 행동 주체로서의 자기와 행동 객체로서의 다른 생명체, 특히 목적적 존재인 사람이 지닌 본질적인 행동성의 실현을 침훼하지 말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창의력 발현창의력은 자기 발전, 자아실현에 포함될 수 있는 개념이다. 자기의 생각을 얽어 꾸미는 것을 실현시키려는 능력이 창의력이다.

목적적 행위소극적인 의미로, 의지자가 그의 진정한 의사에 반해 남의 수단이 됨이 없이 주체적으로 목적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본질 발현이다.      

인간성의 문제

생명체는 본질적으로 위아(爲我: 자기를 위함) 발전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자기를 위해 본성, 특히 자기의 성세를 펼쳐 보이려 한다. 이때 남의 본질 침훼 가능성이 커진다.     


마중의 정도

[행동 객체] •  [행동 자체]•  [행동 도구]에 관한 발현에는〘행동 주체〙의 의도에 따라 대상을 마중하는 정도가 있다. 


방관: 대상의 본질에 관해 특별한 관심 없이 곁보기로만 마중함. 

이해: 대상의 본질을 대상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마중함.

사랑: 대상의 본질이 자기의 본질과 똑같다는 관점에서 공감하여 자기애와 차별 없이 자기처럼 무조건적으로 긍정해 주는 A사랑.     

 

특히 대상에 대한〘A사랑의 삼무층〙이 전혀 없는 남{〘온남〙}인데도 그의 곤경을 도와준다면 매우 큰 〘A사랑〙일 것이며 자기의 희생이 큰데도 이에 거리끼거나 얽매이지 않고 도와주었다면 가장 큰 A사랑일 수 있다.     

마중할 때에도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상으로서의 남의 뚜렷하게나 마음속에 둔 허락이 먼저 있어야 한다. 또 정도에도 얕고 깊은 더 세밀한 정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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