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사회적 객관적 용질관
사회적 객관적 용질관
➀관습의 뜻
개인이 오랫동안 해오는 버릇이 습관이라면 관습은 일정한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온 규범이나 생활방식 등 집단화된 버릇으로 당위를 뛰어넘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관습은 모든 사회에서〘용질〙평가의 가장 중요한 규준이었다. 더구나 관습은 도덕처럼 엄중한 당위적 제약을 가하지는 않지만, 사회 구성원들에게 적지 않은 심리적 구속력을 행사하는 준(準) 도덕적 기준이다.
곧 〘도덕적 원리{도덕률}〙에 합치되는 행위는 타당하다는 우월 평가가, 그에 어긋나는 행위는 부당하다는 당위 평가를 내리는 것과 같은 평가를 관습이 내리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도덕과 관습의 구별이 매우 어려워 [준 도덕적] 역할을 하는 관습의 답습이나 맹종이 평가의 규준으로 도덕률보다 오히려 더 중시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관습과의 일치 여부를 용질의 우열 평가의 중요한 규준으로 삼고 있어서 관습에 어그러진 행동을 하면 열등 평가에 따른 비난을 면치 못할 뿐만 아니라 강제적인 제재를 받기도 하기에 관습의 유지ㆍ전래는 제시 본성에 의해 잘 유지되고 가치관으로써 작용하는 등 가치관으로써 자체 순환하는 구조로 기능한다.
모든 종족에게는 흔히 민족성이라고 불리는 그 문화 고유의 심리적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 문화 인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라페시족의 유순성ㆍ문두구모르족의 호전성ㆍ도부족의 비겁성ㆍ콰키우틀족의 경쟁성 등으로 전형화시킬 수 있는 이들 문화의 특성들이 어떠한 계기에 의해서 발생ㆍ전래되어 내려오고 있든지 간에 이것이 후대로 부단히 계승되어 오는 주된 원인은 다름이 아닌 제시 본성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본능〙의 자연적 발로에 의해서 발생하는 행동을 제외한, 단위 사회가 지닌 문화적 유산은 그 사회에서 우월성을 인정받고 있는 가치관에 의해서 지지되며, 일정한 양식으로 체제화하여 전승된다. 이렇게 하여 결정된 행위 양식으로서의 관습은 개개의 행위에 우열을 판정하는 규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에 부합하는 행위들은 우월[도덕적 타당성]하게 평가되는 반면 이에 위배되는 행위들은 열등[도덕적 부당성]하게 평가됨이 당연? 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들 가운데에는 생리적 욕구에 못 이겨 관습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으며 윤리적 소견에 따라 관습의 어떤 불합리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가 제시 본성의 지배 아래에 있는 존재인 한, 굳이 관습적 행위 양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여 마당 안{장내(場內)} 수용자들의 열등 평가를 불러들일 이유가 거의 없으며 또 그러한 상황을 견뎌낼 만큼 비난에 대해서 초연하기도 어렵다.
증자(曾子)가 “열 사람의 눈으로 보며, 열 사람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그 엄할진저.*”라 지적한 것은 도덕적 근신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대학》 5절. 원문은 다음과 같음. “십목소시 십수소지 기엄호(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②관습의 개혁인 [경장(更張)]
수용자들의 비난과 조소 ―열등 수용에 의한― 를 무릅쓰고 관습을 개혁하거나 관습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사회적으로 매장당함)] 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처럼 존중되어 전승되어 내려오던 관습도 특별한 계기에 의해 쉽게 변혁되어 버리는 일을 우리는 역사에서 적지 않게 보아온다.
일종의 문화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가치관의 변혁은 근원적 요인이 무엇이었든 다중의 호응 ┈바꿔 말하면 대중의 의식에 새로운 행위 양식이 선호되고 그 우월성이 인정되어 여건이 조성┈ 되어야만 관습으로써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 과도기에는 보수적 가치관에 의한 우월 수용적 태도와 새로운 행위 양식을 우월 수용하는 태도가 병존하게 되기 때문에 이들 행위 양식을 택일하지 않을 수 없는 구성원들은 선택에 대해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갈등의 내면을 통찰해 보면 분명히 그들의 갈등 원인이 행위 양식의 논리적 타당성이나 본능적 욕구와의 상치 때문이기보다는 거의가 수용자 대중의 평가 향방 때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얼마 전까지의 한국 가정주부는 시부모 앞에서는 보수적 태도를,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는 새로운 행위 양식을 따르는 등으로 임기응변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었다.
이는 시부모나 자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들에게 열등하게 수용될 수는 없다는 심리적 의식, 곧 〘제시 본성〙때문이다.
아직 관습의 영향력을 그다지 많이 받지 않은 신생아들은 그의 본능에 따라서 의욕하고 행동하고 반응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 그들은 그 자신의 순수한 본성을 선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런데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어린이는 문화에 의해 본성의 제약을 받는다. 문화에 의해 본능이 억제된다면 본능은 심층에 〘잠식(潛識)〙되어 있다가 억제의 압력 요인이 약화되는 시기나 유도되는 통로를 통해 분출되어 해소될 것이다.
만약에 개체의 생태적인 소질이나 성격 등 용재가 사회 가치관과 배치될 때, 개체는 그와 같은 용재 부분을 은폐함으로써 열등하게 수용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사기성ㆍ교활성ㆍ난폭성ㆍ도벽ㆍ공격성ㆍ파괴성 등 소위 반사회적 행위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의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들은 주변인들이 그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일반사회에서는 그들의 성격을 은폐하려 한다. 그들의 자연적 경향인 그 성격을 감추기에는 대단히 힘이 들지만, 비난을 듣는데 따르는 고통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격 경향이 늘 열등하게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예컨대 그러한 경향의 인물들이 주종을 이루는 교도소라든가 클럽 등의 사회에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자존심에 의해 그들의 성향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려는 경향이 우세해지게 된다.
범죄자들은 일반사회 안에서는 그들의 본능적인 성격에 따르는 거짓말하는 재주 • 남의 눈을 속이는 재주 • 폭력적인 성격 등 자신들의 주용재의 성능 발휘를 사회 가치관이라는 타율에 의해 억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로서는 고통스럽게 은폐하고 억제해 오던 충동을 그들만의 세계가 된 교도소 등 같은 성격이나 재능(?)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 앞에서만은 이들 성격을 마음껏 드러내면서도 우월하게 수용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마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성격 경향이 강한 자가 우월하게 평가된다. 그들의 세계에서조차 그들의 용재를 열등하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외부 사회에서의 처벌 때문에 은폐ㆍ억제했을 뿐 본성적으로는 자존심에 의한 자기 긍정성에 따라 우월하게 보는 그들의 기질을 자랑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외부에서 열등시하는 사기성(詐欺性)이 영리함으로, 교활함이 지혜로움으로, 난폭함이 용감함으로, 음란함이 정력 충만함으로……… 곧 열등함이 우월함으로 평가되게 마련인 까닭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를 유지시킴에 동원되는 3가지의 체제 원리를 분별해 낼 수 있다. 도덕 · 법률 · 관습이 그것이다.
이 처벌 규준들의 구분은 이 규준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성원의 내적 근거, 특히 이를 위반했을 때 가하는 최종적인 수단을 고찰해 봄으로써 명료히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다소 특이한 사회의 이단자(?)들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예외적인 사실이 아니다. 과대망상증적인 콰키우틀족의 과시가 그러한 관습의 하나이고 도부족의 교활함이 그러한 사회 가치관에서 형성된 것이며, 야노마모족의 난폭성이 또한 같은 심인에 따르는 관습이다. 문화를 자랑하는 선진 제국도 다름이 없다. 문명인들의 용재 평가도 원시 부족과 마찬가지로 주로 관습에 따라서 내린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법률은 〘생리적 의식〙에 입각해 있고, 사회도덕은 〘윤리적 의식〙에, 그리고 관습은 〘심리적 의식〙에 입각해 있음을 알려준다. 도덕률의 위반을 규제{처벌}하는 내적 의식은 선의지인 양심이다.
도덕적 위반에 대한 규제가 사회에서의 비난에 의해서도 가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지만 이러한 외적 규제는 당자의 심리적 의식, 즉 제시 본성에 영향을 주어 그로 하여금 적법한 행동을 유도해 낼 수가 있을 것이긴 하나 이는 타율적 윤리인 [계율]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도덕적 행위는 아니다.
도덕이란 윤리적 의식에 의해 자기 자신의 행위를 반성함으로써 스스로 도덕률에 대한 의무를 실천하는 데에 성립하는 것으로 선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선의지에 의해서 도덕률을 자율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의도 없이 사회적 압력 때문에 지키는 것은 ┈칸트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적법한 행위이긴 해도 도덕적 행위일 수는 없다.
한편 사회는 법의 위반자에게는 생리적{신체적}인 의식에 외적이고 물리적인 제재를 가함으로써 시정시키려 하거나 적어도 외적 · 물리적인 행위에 관해서 만이라도 적법적이기를 요구한다. 위법자에게 생리적 존망에 관계되는 강제적인 제재가 가해지므로 사회 성원이 이를 위반한다는 것은 생리적 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사태를 자초한다는 뜻이 된다.
때때로 범칙자들에게 과태료ㆍ벌금 등과 같은 경제적 손실을 부과하거나 권리 제한ㆍ명예 실추 등의 타격을 가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도 불응했을 때 준법을 강요하는 최후의 수단은 결국 구금ㆍ징역ㆍ사형 등 생리적 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 제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관습은 도덕과 같은 자율적 의지에 따라서 지지되는 것도 아니고 법률과 같이 물리적 강제력에 의해서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면 관습은 어떤 근거에 의해 유지되어 오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를, 섬너처럼 거듭된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효과적인 생활양식이라거나, 마빈 해리스처럼 생태계의 적응, 경제적인 필요성 등〘긍효〙론적인 근거를 대어 해명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역시 열등 평가를 회피하고 우월 평가에 영합하려는 제시 본성에서 연역하는 바이다.
물론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관습을 도덕과 혼동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적 도덕률로 여긴다는 사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예컨대 사람들은 아무런 실질적 이득도 없을 뿐더러 지키기에 거추장스러운 관습은 물론, 습관적인 것도 아니고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 가벼운 의미의 관습이라도 이를 지켜나감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또한, 관습의 위반이 집단에서의 이탈감을 주는 것도 아니며 불안을 야기시키는 경우가 아님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처럼 가벼운 의미의 관습이라도 이에 벗어난 행위는 주변인들에게는 이상스럽게 보일 걱정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스럽게 바라보는 눈초리나 경멸적 평가 등 열등시하는 수용 태도를 견디기는 쉽지 않으며 더구나 사람들은 구태여 관습을 위반함으로써 열등하게 수용될 위험에 빠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심리가 관습을 유지시키는 동기이다. 이와 같은 제시 본성적 심리는 관습에만 해당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관습의 위반에 수반되는 열등 평가의 회피와 똑같은 반응은 모든 행동의 경우에 보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