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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08. 2024

신적(神的) 자존심과 제왕적 자존심

인간의 가장 높은 자존심의 수준

인간의 가장 높은 자존심의 수준


신적 자존심과 제왕적 자존심

지금까지 초든 자유의 개념은 속박으로부터의 뛰어 벗어남이라는 자유의 소극적 측면에 관한 설명이었다. 인간 자존심의 소극적 측면이 이처럼 자기 극성(極性: 이극이나 기극)*을 등지는 영향력으로부터의 해방, 곧 자유라면 자존심의 적극적 측면은 자기를 세계의 최고자라거나 그 원인으로 여기고자 하는 의지이다. 앞에서 초든 이성적 자존심과 기성적 자존심은 그러한 자존심의 근원적인 가치에 의해 나누어 본 것이다. 


*극성(極性): 이성과 기성의 끝의 바탕: 자매서인 정신의 구조 제3장 의식의 체류 참조.   


자존심은 또한 각인의 성격이나 의식 체류처에 따라서 수준의 정도에 따르는 많은 섬돌(계층) 단계들이 있다. 그러한 단계의 가장 높은 마루에 자리 잡은 것으로 [신적(神的) 자존심]과 [제왕적(帝王的) 자존심]을 가리킬 수 있다. 


일반적인 자존심은 자기를 귀중한 존재로 여기는 수준의 자존심인데 견주어 신적 자존심과 제왕적 자존심은 거의 극도로까지 높여진 자존심이다. 당연히 그 반대의 자존심도 있는데 자기의 자존심을 침해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수준의 소극적 자존심과 자기의 열등감을 들키지 않으려는 수준의 위축된 자존심도 있다. 


제왕적 자존심에서 한 단계 더 넘어서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결과적 용질의 최고자의 지위를 넘어서서 그러한 용질을 유래하게 한 원인, 더구나 그런 원인의 최고 원인일 만유의 의지적 존재인 [창조주]로 여기려는 [황당무계]한 자존심까지도 지니는 것이다. 


 세계 원인의 최고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만유의 창조자이며 지배자인 신(神) ―이러한 개념의 존재자가 실재하거나 아니하거나에 불구하고― 이라 할 것이다.      


신적인 자존심을 명시적으로 천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신적인 존재임을 암암리에 주장하려는 사람은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종종 볼 수 있다. 두드러진 예로 자신이 [재림 예수] ―기독교의 교리에서 예수는 신의 아들이며 신 자체이기에―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재림예수

자존심에는 적극적 측면과 소극적 측면이 있다. 적극적 측면에서의 자존심의 최고 수준은 세계에서 자기의 영향력을 가장 다량 막대하게 행사하는 창조자가 되어 자기가 만사(萬事)의 원인, 곧 자신이 [창조주]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다다르는 망상이다.      


이러한 자존심의 측면은 일반인들에게는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하는 소문에 의해서는 이러한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물론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이러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남에게서 당연히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며 단순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현실아에 비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터무니없이 높은 그의 이상아로 인해 그러한 평가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다만 그러한 심리 상태를 간파하려 하는 것이다.      


●자존심 자유. 기성적(氣性的) 원인일 유전(遺傳)에서의 자유를 소망하는 신적 제왕적 자존심의 소유자. 일부 종교인들은 그들의 교조가 자기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수치로 여기거나 열등함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 제자들은 그들의 교조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기는 했으나 그 겨드랑이에서 태어났거나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유전(遺傳)으로부터의 자유, 곧 기성적 인과율에 종속적임과 부정적 평가를 받는 성적 연관성을 부정하고 독자적이고 정결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이 원칙은 또한 [사회 가치관 우월성] ●●●●     

신의 개념은 제시의 두 가지 기능에서 나타난다. 


창조자로서의 신: 신은 세계와 이 세계 안의 물질적 • 예지적 작동 원리 및 법칙을 설계하고 창조한 존재로서 표상된다. 

통제자로서의 신: 신은 이 세계를 창조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와 이 세계 안에서 사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운명을 그의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한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통제(統制)하는 존재로 표상된다.      

신적 자존심은 최후로 자신이 이 세계의 궁극적 창조자인 동시에 통치자라는 지위에 관한 성격이다. 

          

명예를 획득하려는 인간의 끈질긴 욕망은 번식 욕망을 포함한 다른 욕망보다, 더 근원적인 본성이어서 인간의 욕망은 자신이 세계의 통재자가 되어 이 세계를 자신의 이상에 따라 설계하려는 의지에 이른다. 그러나 피조자인 인간으로서는 이러한 이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을 꿈꾸는 것 자체는 충분히 가능한데 이것이 신적 자존심이며 이러한 신적 자존심에 관한 의지는 결코 허상이 아니라 현실에 실제로 있는 현상이다. 예컨대 할리지가 그러한 사람의 하나이다

.      

할라지[al-Hallāj]*는 858년에 이란 남부의 바이다에서 태어나 922년에 바그다드에서 형사(刑死)한 무슬림으로 신비주의 사상을 공부, 결국 독자적인 신비주의설을 제창하였다. 쥬나이드에서 파문된 후 바그다드로 돌아와서, 자기의 주장을 설교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신의 [화신(hulūl)]을 체험하고, “나는 신이다(anā al-haqq)”라고 외치고 기적을 행하여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슬람의 교의에서 보면, 할라지의 사상은 이단설이어서, 수니파로부터도 시아파로부터도 이단으로 고발되고 913년에 체포, 922년에 처형되었다. *할라지 [al-Hallāj] (종교학대사전)

      

위에서도 초들었다시피 신의 개념에는 [천지 창조 능(能)][천지 통제 능]을 아우르는 능력자이다. 


천지 창조는 이미 끝난 사업이므로 지금 새로운 신이 나타나 천지를 창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남은 것은 천지 통제력뿐인데 어느 누가 천지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신격화] 

세상에, 특히 한국에는 수많은 자천타천 선지자와 예수 ―기독교 계열에서는 예수가 [신]이기에― 가 있다. 스스로 예수의 신도라는 사람들이 신적 자존심에 부풀어 올라 예수가 그렇게나 경계하여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마 7:15)― 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예수, 또는 선지자라고 주장한다. 어떤 우리나라의 추정치*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독교계에 40명~150명 가량의 자칭 예수, 자칭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      


어떤 연예인들의 자존심

신격화된 자존심이 종교 특히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궁예가 자신을 미륵불이라고 주장한 일도 있고 연예인들 가운데에도 자존심이 넘쳐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강이 ⸺가명임 ⸺ 라는 한국의 어느 트로트 가수가 “내가 예수인 줄 알아”………과대망상으로 정신병원 입원한 일이 있음을 토로한 신문 기사를 보자. 입력 2012-09-06 13:40:30  

   

트로트 가수 강이(가명)가 자신이 과거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공개했다. 강이는 2012년 9월 5일 방송된 KBS 2TV ‘여유만만’에 출연해 가수 박모씨와, 이 모양과 함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강이는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 우울증과 과대망상증을 앓았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한마디로 하면 조울증이다. 이색 지대의 보컬로 발탁돼 연습을 한 7, 8개월 했다. 연습 끝나고 정식 스튜디오 가서 녹음했는데 정말 좋더라. 3일 밤낮을 한잠도 못 잤다. ‘이별 아닌 이별’만 돌려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이는 그땐 내가 정말 예수인 줄 알았다. 그래서 성당 신부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기도드린다고 했더니 정신과 상담을 말했다.”며 “정신과 전문의에게 ‘내가 예수라면 믿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2달간 입원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강이는 “첫 방송 하기 위해 외출증을 끊어 나왔다. 과대망상으로 폐쇄 병동에 들어갔다. 조울증이 정말 심했다. 들어갈 땐 예수님이었는데 나오니까 미미한 존재더라”고 덧붙였다.

*동아닷컴 연예 뉴스팀  http:ㆍㆍsports.donga.com3all20120906491664862   

  

이런 사람들이 결국 강이 한 사람뿐이겠는가? 위에서도 초들었다시피 우리나라의 기독교인 가운데 자칭 예수라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그들은 이성이 지극히 높이 발전해서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상아가 현실아에 비해 너무 높은 정신 이상자적 기질을 가진 이상 성격자, 곧 망상증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99%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러한 우월감은 너무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한 번 돌아볼 가치도 없는 병적인 망상증이라고 도외시할지도 모르며 우리가 현실적인 상황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이 올바른 판단이다. 인간의 자존심이 얼마나 기고만장하거나 간에 그는 하나의 피조물 ―창조설에 의해서이든 진화설에 의해서이든― 이며 자연의 인과 법칙의 필연적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그같이 불손하며 무엄한 과대망상증에 빠진 것일까? 이를 해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간략히 언급한다면 이러한 망상은 아무런 근거 없이 발현되는 정신 병리적{망상증} 증후일 수도 있지만 우월성의 원천인 이성적 세계 ┈곧 인간의 이성은 현실의 경험계와는 다른, 우월성과 자유의 원천인 ┈칸트의 용어에 따르면┈[예지계(叡智界)] 곧 〘이(理)}에 연결된 〘이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자유와 존엄의 존재로 여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경험계의 냉엄한 현실 세계에 대처하기 위해 분주한 의식이 잠시 한유한 틈을 타, [가상계]에 연결되어 있는 신적 자존심이 의식의 전면에 떠올라 행세하게 된 것이 현실적 직관{객체적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주관적 관념의 세계인 자존적 망상이다. 


현실의 인간은 무력하고 나약하며 무지몽매한 일 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비현실적 자아상(自我象)으로서의 망상은 현실의 실상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심성인 제시 본성은 수용자 집단인 사회로부터의 가치관에 의한 평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수동적 존재이다. 


그래서 사회 가치관을 도외시하면서 그의 자존심을 주장한다면 사회 적용에 실패한 열등자의 낙인이 찍히고 그에 따르는 부정적 수용의 괴로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 신적 자존심이 외부의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삶의 근저에서 연유하는 그러한 본심을 버리고 그 자리를 사회적 평가관에만 순순히 내어줄 수는 없다.           


제왕적 자존심 

제왕의 역할

자기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감인 신적 자존심은 현실 앞에서 손상을 입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일부 후퇴하여 다음 단계인 제왕적 자존심[자기 용재 일체를 우월한 것으로 여기려는]의 자리로 대체시키게 된다. 


그러나 제왕적 자존심은〘신적 자존심〙과는 다르다. 제왕적 자존심의 달성 역시 일반 서민에게는 꿈에 지나지 않지만, 전 세계의 오랜 역사 속에는 실제로 셀 수 없이 많은 제왕이 있었고, 더구나 용질에서의 우위성을 토대로 한 기능적 제왕들은 숱하게 많이 있다. 


그들은 용재의 우월성을 디디고 의지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왕은 평민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지위이기는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지위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제왕적 자존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위를 얻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또 신적 자존심은 일체의 오류와 불가능을 용납하지 않는 완전성의 개념이어서 현실적으로 이에 부응할 수 없는 자아에게 많은 상심과 타격을 준다. 그러나 제왕적 자존심은 ―신적 자존심보다는 크게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훨씬 느슨한 표상을 주기 때문에 자아를 편안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제왕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가 바라는 모든 주관적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으면서도 무지와 실수가 용인되는 존재이다. 그러면서도 제왕은 경험적 현실적 세계 안에서의 모든 평가관의 근원이 되며 의지의 핵심이 된다. 말하자면 제왕적 자존심의 차원에서는 그의 객체적 한계가 용인되면서도 그의 주체적 우월성을 확보,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정력의 과다한 소모 없이 안도감 속에서 그의 권력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 매력을 맛본다.  

    

신적 자존심의 정신적 측면은 [의지]에 있다. 이에 견주어 제왕적 자존심의 정신적 측면은 [용질]에 있다. 

신적 자존심은 그 근거를 행동의 원인인 의지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의 행위 일체가 타당하다는 무조건적 긍정 감으로 표현된다. 


제왕적 자존심은 행동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인 용질의 우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자존심이 긍정하는 것은 자기의 용재의 우월성이 된다. 따라서 신적 자존심에서는 그의 일체의 행위가 그릇됨이 없이 정당하며 실수나 착오가 없는 것으로 여기려는 막무가내의 고집으로 나타나고, 제왕적 자존심에서는 그의 용재의 우월성을 맹신하려 한다. 


그는 견줄 수 없는 신체적 능력과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그의 정신은 완벽한 통찰력과 창의력을 지닌 것으로 확신된다. 그는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고귀한 신분의 존재이며 만물은 그의 상상적 소유의 대상일 수 있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제왕 사전적 의미로서의 제왕은 의지의 실제적 통제력을 지닌 정치 지도자이다. 정치적 제왕은 근대에까지 신분제에 의해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평민들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지위였지만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실제적 존재이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극히 어렵기는 하지만 그 지위가 만인에게 열려 있다. 


기능성 제왕 용재의 최고 기능자로서의 능력을 지닌 그 계통 최고의 실력자. 왕은 “용질의 최고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어있다. 우리는 특정 분야의 최고 실력자, 곧 최고 우월 용질 소유자를 곧잘 왕(또는 황제)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골프의 제왕]ㆍ[씨름판의 황제]ㆍ[가요계의 여왕]ㆍ등으로. 인간은 자기가 그러한 왕이 되고자 하며 자기를 제왕으로 여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과장일까? 필자가〘제왕적 자존심〙이라고 부르는 이 심성을 좀 더 근원적으로 탐색해 보면 이 말은 과장이기는커녕, 오히려 매우 절제된 ―또한 줄여 말하는― 지적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뒤에 쓰게 될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다만 주관적 자존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심성을 그 근저로부터 통찰하면 거기엔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인간은 적어도 자신의〘용재〙가 모든 분야에서 최고자라는 맹목적ㆍ무조건적 자존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절대시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 용재적 분야의 [원인적 존재]이기를 주장하고자 한다. 이는 자신의 용재 분야의 여러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와 같은 용재 분야의 모든 현상을 발현시키는 절대 유일의 원인 또는 이유이고자 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인간은 자신을 내외의 원인으로부터의 속박에서 초월해 있는 자유의 존재자이며 동시에 자기 용재 분야의 최고의 용질자인 [왕]으로 여긴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러한 초현실적인 자존심은 깊은 잠식(잠재의식)의 밑뿌리에서의 거의 몰각{무의식} 상태로만, 존재하나 때로는 자각으로도 나타난다.  

    

갓난애가 큰 소리로 우는 것은 그의 욕구 불만을 호소하여 부모에게 동정을 받으려는 가련한 애원의 소리가 아니라 당연히 충족되어야 할 그의 제왕적 대우를 늦추는데 대한 분노의 감정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어린이가 슈퍼맨의 영화를 보고 축대 위에서 뛰어내리는 경우라든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망상증 환자나 일부 종교가들이 자신을 재림한 구세주라고 주장하는 것 등은 모두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러한 자존심이 ―땅 밑의 마그마가 지표를 뚫고 올라오듯이― 의식의 자각적 표면에 떠오르는 까닭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자존심의 노출은 극히 드문 일이어서 이상(異常) 성격이나 이상 심리로 취급되며, 일반인들에게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잠식{의식이 깊숙이 잠긴 상태}〙에만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자존심의 작용은 만인에게 보편이다. 


인간의 존엄성의 측면에서 볼 때, 자존심의〘발현〙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가치관의 형성이 되어있지 않아 몰염치하고 야비한, 한 마디로 천박한 인간이라는 열등 평가로 낙인찍힐 위험까지 있다. 말하자면 자아의 자존심을 너무나 지나치게 이상화(理想化: 이상아화(理想我化))하면 ―칸트의 용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표현하면 "실질 없는 자존심은 공허하다."― 망상 상태에 빠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자아의 자존심이 거의 없는 자는 자기의 존엄성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조악한 야만인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실질적 용질 수준]에 일치하는 ―자기에 대한 자신감인― 자부심을 소유하는 것은 지나친 겸양이나 자홀감(自惚感: 나르키시즘), 또는 무치심(無恥心: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함)에 비해 떳떳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잊혀진다는 두려움

인기 연예인들이 밝히는 스타증에 관해 읽어보자.*

*http:ㆍㆍnews.donga.com3all20120726480744461


여러 연예인들[기사에 거명된 이름으로 차아무개씨ㆍ이아무개양ㆍ슈퍼●●●ㆍ임아무개씨ㆍ김아무개양ㆍ김아무개씨 등은 자신이나 주변의 아는 이들이 스타가 된 뒤에 지니고 있던 심리적 경향, 곧 스타병에 관해 털어놓았다. 특히 뚜렷한 사례는 ┈이 사례가 부정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김아무개양의 고백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예인이 인기를 얻은 뒤 거만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스타병]이다.“ 라고 지적한 뒤에 연예인이 이 '스타병'에 걸렸던 과거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놔 눈길을 끌고 있다고 뉴스엔이 26일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차아무개씨는 24일 방송된 KBS 2TV '●●장구'에서 스타병에 대해 고백했다. 


차아무개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친구처럼 허물없이 자랐다. 그래서 예의를 많이 못 배웠다. 하지만 덕분에 더 밝을 수 있었고 그래서 기본적인 예의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첫 드라마와 첫 영화 '●●●인 그녀'가 잘 됐고 곧장 가수로 데뷔했다. 그때는 정말 뭘 해도 됐다.”"며 "데뷔할 때부터 싸가지없다는 얘길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아무개 양도 스타병을 고백했다. 이양은 지난 4월 아무 방송국(SBS)의 '●●●●,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과거 기자회견에 30분 지각했다. 만약 지금 같으면 사과했을 텐데 그땐 어려서 기자들이 너무 무서웠다. 사과 안 하고 그냥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양은 "내가 사과도 안 하고 인사도 안 하니까 기자 30~40명이 카메라 접더니 보이콧하더라. 그땐 계속 남 탓만 했다. 웃으면서 '기자님들 너무 죄송해요.'라고 내 자신을 낮췄다면 보이콧은 없었을 거다"라고 후회했다. 이 양은 당시 상황에 대해 "솔직히 그땐 '내가 이 양인데 사과까지 해야 해?'라는 마음이 더 컸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슈퍼주니어 이 군은 멤버 아무개의 스타병에 대해 폭로했다. 이 군은 지난 3월 SBS '강심장'에서 "슈퍼주니어 멤버 중에도 스타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 바로 아무개다"라고 말했다. 이 군은 "해외 공연을 가게 되면 공항에 팬들이 마중 나온다. 아무개는 팬들에게 다가가 사랑의 총알을 쏜다.”고 폭로했다.  

   

[강이]는 SBS [강심장]에서 "진짜 스타병에 걸린 사람은 [낭이]이다. 낭이는 어두운 영화관에 갈 때도 선글라스를 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당이]의 폭로에 당황한 낭이는 "당이는 더 심하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그 상태로 미스트까지 뿌린다."고 말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개그맨, 개그우먼도 스타병에서 예외가 아니다. [랑이]는 한 방송에서 "(전성기 시절) 스타병에 걸렸다. 이로 인해 1년간 공백기를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랑이는 "공백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두려움이었다."고 털어놨다.


[망이]는 개그맨 [방이]의 스타병에 대해 폭로했다. 망이는 최근 한 방송에서 "방이가 SBS '●●' MC로 활약하게 된 후 스타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망이는 "그런 시간이 오래 갈 것 같니? 얼마 안 가 슬럼프 올 거다."라며 귀여운 질투를 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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