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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17. 2024

넘어진 일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이유

네이버 지식인에서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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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넘어지면 왜 창피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 넘어지고 말았어요. 그것도 출근 시간에 서울역에서요.

손바닥이 아프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창피하더군요.

회사에 도착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넘어진 게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창피한 걸까요?


네이버 사전을 확인해 보니,     

창피하다(猖披--)  [형용사] 체면이 깎이는 일이나 아니꼬운 일을 당하여 부끄럽다.

체면(體面)  [명사]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     


넘어지면 남을 대하기에 떳떳하지 못해지기 때문에 부끄러워지는 걸까요?

넘어져도 다친 부위 신경 쓰는 것보다 창피해 하는 수많은 대한민국 시민권자들을 위하여 답변 부탁드려요.     

그러고 보니, 문화권이 다른 나라에서도 창피해 할까요? 궁금하네요.     

1. 넘어지면 왜 창피할까요?

2. 문화권이 다른 나라에서도 넘어지면 창피해 하나요?

(진지하게 궁서체)     


내공은 쓸데없이 넘쳐나기에 최대로 합니다. 답변 채택은 꼼꼼히 읽어보고 할게요.

"질문자님만 그런 겁니다." 이런 답변은 미리 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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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❶넘어지면 왜 창피할까요?     

인간은 자신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 관한 것이라도 남이 그것을 열등한 내용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흉을 잡히면- 우월성에 대해 상처를 입고 일종의 부정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질문자님이 넘어지신 것은 사실 사소한 실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전에 “창피하다(猖披--)  [형용사] 체면이 깎이는 일이나 아니꼬운 일을 당하여 부끄럽다.”

라고 되어 있고 “넘어지면 남을 대하기에 떳떳하지 못해지기 때문에 부끄러워지는 걸까요?”     

라 물으셨는데 사전의 설명은 이 경우에 비해 의미가 강하게 되어 있군요. 실수로 넘어진 것이 떳떳하지 못한 일일 수는 없습니다.      


떳떳하다는 것은 도덕적 개념으로 실수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실수로 넘어진 것이 아니꼬운 일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넘어진 일에 대해 질문자께서 창피함을 느끼게 되는가?      

이 점에 관해 오직 사실판단상의 이유[또는 원인]만을 냉정하게 적어봅니다. 

         

그 이유[또는 원인]는 일단 맨 위에 적어놓은 대로  

남이 열등한 내용으로 평가한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이르면 –그래서 흉을 잡히면- 우월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일종의 부정감정을 가지게 되는 인간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들어내어 보이려는(제시(提示)) 본성[제시본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에게 보이려는 이 본성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우월한 부분은 들어내 보이려 하지만 열등한 부분은 은폐하려 하는 조건적인 것[우월성]입니다. 

    

우월성에 있어서 자기의 우월함을 들어내 보이려는 적극적 측면을「과시(誇示)」라 하고 자기의 열등함을 감추려 하는 소극적 측면을 우리는「은폐(隱蔽: 감춰 가리다)」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우월함을 들어내 보인다는 것이 예컨대 대통령이 되어 명예를 드날리는 등의 거창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을 비롯한 모든 일에도 이러한 본성이 들어납니다.          

[행위의 열등성자기의 움직임을 정확히 하지 못한데 대한 부정감정]      

넘어지는 일 뿐만이 아니라      

◉그릇 같은 것을 남보다 훨씬 더 잘 깬다든지, 

◉남은 잘하는 스텝을 하지 못해 춤을 제대로 추지 못한다든지, 

◉자기 친아버지가 시어머니 앞에서 망신을 당한다든지, 

◉점심 때 먹던 토마토 케첩이 얼굴에 묻은 것을 모르고 군중 속을 웃으면서 걸어 다닌 것을 의식하게 되든지, 

◉남대문이 열린 것을 모르고 점잖게 걸어가던 신사가 그것을 알아차린다든지…………    

      

[형태의 열등성자기의 정신ㆍ육체ㆍ지위ㆍ재화(財貨)가 남보다 열등한 데 대한 부정감정]     

◉40대도 안 되었는데 머리가 센다든지[육체], 

◉손가락이 6개라든지[육체]

◉교실에서 교사가 물어보는, 별로 어렵지도 않은 문제를 –더구나 자신의 남친이 바라보고 있는데- 풀지 못해 쩔쩔 맨다든지[정신/ 지능] 

◉친구의 아버지인 국회의원과 노점상을 하는 자신의 아버지가 만난다든지[지위(신분)]

◉정원이 달린 100평이 넘는 집에서 사는 친구가 15평의 자기 삭월 셋방에 놀러왔다든지[재화]     

………… 등등 모든 부분에서 다 그러합니다.      


※단 이러한 본성이 나타나는 것은 지능이 높고 예민한 사람의 경우이며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음. 지능이 낮거나 둔감하거나 예외적으로 특정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 등등. 

     

이러한 인간의 본성 상 타인에게 자신의 열등한 내용이 드러났다는 점을 의식하면 그에 따르는 부정적 감정인 수치심이 발생하게 되는데 [치욕(강력한 수치심)] [창피함(가벼운 수치심)] 등은 수치심의 한 종류입니다.      

※행위의 도덕적 잘못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은 죄의식.      

    

내가 써놓은 《심리의 원리: 1. 서론 Ⅱ 우월성(優越性)  우월 제시》[참대의 철학ㆍ심리 산책에 올려 있음]의 내용 일부를 적어봅니다. 


…………그래서 새로 맞춘 최신 모드의 의상을 차려입고 그에 어울리는 구두와 핸드백을 든 뒤 그 매력적인 모습을 한껏 과시하려고 나들이하던 아가씨라 하더라도 명동(明洞) 입구에 들어서다가 갑자기 미끄러져 옷이 그만 흙투성이가 되어버렸다면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황급히 어디로인지 숨어 은폐해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인용하고 있는 프랑스인 콩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반란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동안에 꽁트가 가장 불쾌하게 생각했던 일은 상원 앞에 훌륭한 복장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처형되는 순간에도 그가 괴로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머리를 말끔히 깎는 것을 허가해 주지 않는 점이었다는 것이다.     


토마스 빅스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홧김에 주인을 살해한 이 노동자는 처형의 날, 목사의 마지막 설교를 경청하는 것에는 마음이 없고 처형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큰 뱃심을 보여 그들을 놀래 주려고 곰곰이 궁리한 뒤, 단두대로 걸어가는 도중,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자 여러분! 도트 박사의 흉내가 아니라 나는 이 세상 맨 밑바닥의 비밀을 탐지하러 가려오.”     

하고는 단두대에 이르자 구경꾼들에게 일일이 윙크를 보냈다는 것이다*.  

   

육체적 생존만이 삶의 전부라면 이제 영원히 삶을 되돌릴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서 그가 한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형을 당하는 것이 명예일리는 없다. 죽음을 초탈한 위인이 아니라면 그것은 치욕으로 간주될 것이다.      


토마스 빅스는 군중들에게 자기가 담대함을 보여줌으로써 치욕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 자기가 죽은 뒤에라도 그의 존재에 대한 인상이 우월하게 -아니라면 최소한 열등하지 않게- 인각되어지기를 바랐음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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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함이라는 감정의 발생 조건

[자기제시가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의식에 의해서 발생하는 반응임].   

    

["창피함"과 "드러나 보임(자기 제시)"의 상관관계]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넘어졌어도 창피한 마음이 들까요? 

 장님들만 모여 있는데다가 거리가 멀어서 그들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넘어져도 창피한 마음     이  들까요?

 영화중의 한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일부러 넘어져도 창피한 마음이 들까요?  

   

※단 자기의 능력에 대한 기대치가 높거나 그러한 것을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누가 보지 않는 경우에도 수치심[자괴감]을 느낄 수 있음.     


[창피함과 상대적 열등성의 상관관계]

 일류가수보다 노래를 잘 못 부른다고 창피한 마음이 들까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는 일에 창피한 마음이 들까요?[몸이 아픈 것도 열등성의 일종이지만 자신만의     경우가 아닐뿐더러 거의가 자기원인이 아닐 수 있음]

 10세 어린이가 세계 레슬링 챔피언과 팔씨름을 하다가 졌다고 창피한 마음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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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에 대한 절망으로 인해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여 자존심이나 체면, 도덕 등 일련의 행동을 포기한 사람[자포자기 자]이거나 

◉자기가 매우 열등하다는 점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바보[저지능 자], 

◉우열의 의식이 명료하지 못한 자[어린이ㆍ치매노인 등]      

 등은 창피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❷문화권이 다른 나라에서도 넘어지면 창피해 하나요?     

이러한 감정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내가 "심리기 명예제시기"라고 부르는 의식 체류기에 머물러 있는 인간으로서는 보편적으로 발현하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개인이든 사회이든 어떤 특정한 문화권[사회가치관적인 권역]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지닌 가치관적 의식에 의해 창피함 – 그 외의 다른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의식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임.       


그런데 우리 한국인은 특히 자기과시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이에 관해서는 내 불로그 [참대의 철학ㆍ심리 산책] 심리에 대한 단상: 한국인의 과시욕 참조]. 사회가치관에 의해 이러한 사조에 물들어 있는 우리로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창피함이나 열등감에 더 민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다른 나라나 문화권이 어디인지를 현실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지적할만한 지식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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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함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강해 무슨 일이든 우월해 지기를 바라는 아주 정상적이고 진취적인 본성에서 울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실수로 넘어진 것은 [승패 병가지상사(勝敗 兵家之常事: 이기고 지는 것은 싸우는 사람으로서는 늘 있는 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으로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늘 있는 일이어서 창피하다는 생각을 지속해 가질 사유는 아니므로 괘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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