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깨달음

기억을 한다는 것

by 펠릭스

우연히 들린 전시회. 그곳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내 고민의 매듭을 묶어주기엔 충분했다. 아.... 그렇네. 그렇구나. 그랬구나. 그랬다. 내가 찾던 방향이 여기에 있었다.




마지막 퇴사는 여러 계기가 있지만, 일의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퇴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빙빙 둘러 왔지만, 결국 AI란 녀석 때문이다. 2024년 초부터 AI와 관련된 업무들을 시작했다. 빠르다면 빠르게 AI를 이용한 개발을 진행했고, 내부 인프라 개선을 위해 여러 일들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진통이 있었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AI가 아니였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였다.


어느 순간부터 리더들은 AI로 확인은 해봤어요? 란 말을 유행처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으면, AI를 잘못써서 그런거니 공부해라. 란 말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기 시작했다. AI는 완벽한데, 니가 잘못한거다. 이 말로 회사는 병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AI가 신기했다. 다 될 거같이 보였고, 내가 해왔던 게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나는 내가 AI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이 재미없어졌고, 퇴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내 퇴사할 때쯤, 내가 싫어하는 게 AI가 아니란 건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퇴사할 때쯤, AI는 완벽하다는 말이 사라졌다. 다시 직접 확인해 본 거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AI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신적 존재가 사라졌다. 그 시점에, 나는 회사를 나왔다.




"AI를 못 해서 퇴사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나는 세상을 따라갈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패배자였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보고 듣다 생각들이 정리되었다. 내가 싫어하던 게 AI가 아니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였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문제였다. 생각하지 않게 된 사람이 아닌, 생각하지 않게 한 사람이. 정리하고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답은 더 있었다.


나는 AI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상한 질문이지만, 나에겐 큰 질문이다.

내가 AI를 쓰면서 가장 많은 의문이 들었던 게 하나 있다. AI를 쓰면 쓸수록 생각들이 선택지로 바뀐다. 나중에는 생각을 멈추고,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만족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내가 맘에 들어서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여서 고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이게 너무 이상했다. 이 과정이 이해되지 않았고, 왜 이게 좋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빠르게 되었다. 선택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택해야 할 선택지도, 그리고 그 결과도. 나는 이게 너무 이상했다. 그리고 이 이상함을 해결할 수 없었다. 뭐가 이상한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니, 질문을 만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AI를 어떻게 봐야할지 몰랐다.




전시회의 한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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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를 다 읽기도 전에 매듭이 하나 풀린 기분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어색함, 불편함은 이거구나. 기분이 좋아졌다. 뭐가 불편했는지, 뭐가 맘에 안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기억이 사라지는게 싫었던 거구나. 집에 있는 책들을 다시 봤다.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란 책이 서재 한켠에 있다. 예전 책인데, 이 책에 끌려서 샀던 기억이 있다. 이제 왜 이 책이 끌렸는지 알거 같다. 책을 읽어야겠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어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에게 상담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한다. 이제 막 리더란 직책을 맡아서 몇 개월 지난 거 같은데, 나에게 연락을 해줬다. 이제 이 친구에게는 해줄 말이 좀 있을 거 같다. 도움은 몰라도, 생각거리 하나는 던져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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