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사회의 첫맛

by 셀앤서

직장인들에게 회식은 반갑지 않을 수 있지만, 소고기는 언제나 반가운 존재다. 누군가는 소고기를 사주는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까지 말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나의 파격적인 취향을 들은 사람 대부분은 제대로 된 소고를 먹어보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되묻고는 한다. 하지만 특이한 나의 식성은 소고기보다는 닭고기였고, 또 닭고기보다는 과일이 더 입에 맞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채식주의자인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런 내가 사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근로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소고깃집이었다. 문을 연 지 몇 달도 채 되지 않은 가게로 30대 부부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당시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 둘 다 초보였고, 초보들이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사장님 부부는 일하다가 어떤 상황이 와도 결코 화를 낸 적이 없었다. 특히 내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오히려 수습을 도와주며 괜찮다고 다독여 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깃집에서의 근무는 어려운 일 투성이었다.


실제로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말하면 다수의 사람들은 힘들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먼저 경험했던 친구들도 고깃집에서의 일을 추천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숯불 향 가득한 고기 냄새를 맡으면서도 집어 먹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일하고 있으면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도 시선이 불판 위의 소고기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님을 응대하면서도 무거운 철판과 수많은 반찬을 계속해서 나를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있어야 했다. 고깃집에서의 근무는 누구나 시도할 수는 있었지만 오랜 시간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이런 숨겨진 역량이 필요했다.


“오늘 저녁에는 계모임이 있어서 단체 손님이 올 거야.”


고깃집에서 가장 바쁜 시간대 중 하나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근처 회사의 회식이나 모임으로 단체 손님들이 많이 방문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단체 손님이 오면 한 번에 여러 테이블을 서빙해야 하는 탓에 굉장히 정신이 없었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따라서 단체 손님을 맞이하기 한두 시간 전부터는 전투태세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예약한 인원수대로 물티슈를 미리 자리에 세팅하고, 기본 밑반찬도 바로 내어갈 수 있도록 큰 트레이에 나눠서 담아 둬야 했다. 그리고 숯에도 미리 불을 붙여 두어 손님이 오면 바로 테이블에 세팅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아가씨~ 여기 상추 좀 더 줘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나에게 가장 적응이 안 되었던 것 중 하나는 호칭의 변화였다. 그동안 학생이라고 불리던 내가 일을 하면서부터 다른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 이모나 아줌마라는 호칭이 익숙한 지금의 나에게는 그 호칭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괜찮은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에게 새롭게 바뀐 호칭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호칭에 익숙해질 무렵이 되었을 때는 나는 이미 훌쩍 20대 중반을 바라보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일을 하며 나는 호칭의 변화뿐만 아니라 혹독한 사회 신고식도 치르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동네 어른들이 종종 ‘공부가 제일 쉬워.’라고 했던 말이 계속해서 내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가게 안을 계속 돌아다니다 보니 종아리 근육이 뭉쳐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아팠고, 무거운 고기 불판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느라 양팔에는 욱신거리는 근육통도 생겼다. 그리고 가게가 바쁜 날이면 정신이 없다는 말이 딱 맞는 듯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퇴근을 하고는 했다.


이렇게 나를 지치게 만든 주범 중 하나는 손님일 때 좋아하던 고깃집의 수많은 밑반찬이었다. 배추김치, 물김치, 파김치 등 김치의 종류는 왜 이렇게나 많은지. 반복되는 상추 리필과 불판 교체를 하다 보면 체력이 동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하지만 고깃집에서 나를 괴롭히던 가장 큰 문제는 손님이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잿더미가 된 숯과 기름때였다. 숯은 특성상 타고나면 잿가루가 많이 흩날렸는데,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흔들면서 들고 가다가 바닥을 온통 잿가루 범벅으로 만든 적도 있었다. 고기를 굽고 나온 기름때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분무기에 소주를 담아 칙칙 뿌린 다음 행주로 여러 번 반복해서 계속 닦아야만 지워졌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힘든 노동을 견디고 퇴근을 하면 나를 반기는 것은 온몸에 지독하게도 깊게 벤 고기 냄새였다. 처음에는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좋아했던 숯불 향은 점점 맡기 싫은 냄새가 되어버렸다. 고기 냄새를 풍기며 집에 오는 길이면 온몸이 축 늘어져 녹초가 되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반겨주던 것은 항상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던 아빠였다. 잔뜩 지친 기색을 하고 들어온 나를 보며 아빠는 종종 오늘 근무는 어땠냐고 물었다. 눈치 없이 그런 질문을 하는 아빠를 보며 나는 괜한 심통을 부리고는 했다.


그런 나에게 아빠가 해준 것은 많은 용돈도 비싼 선물도 아닌 안마였다. 내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긴 시간 서 있느라 뭉쳐있던 다리를 정성스럽게 주물러 주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빠는 더 치열한 어른들의 사회에서 나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냈을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아르바이트가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는 딸을 위해 기꺼이 마사지를 해주었다. 사회의 쓴맛을 보고 잔뜩 지친 딸을 위한 아빠만의 달콤한 위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다음 날이면 나는 한결 가벼워진 다리로 다시 고깃집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소고깃집은 나에게 사회생활의 쓴 맛을 알려준 곳이었다.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 사회에 나온 내가 본격적인 어른들의 노동의 세계에 입문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어른이라는 타이틀에 갇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여전히 어리고 여린 내가 사회의 혹독함에 악을 쓰며 울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속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가까운 사람들의 온기이다. 아무리 사회가 쓰다고 하더라도 이 맛을 중화시켜 줄 달콤한 온기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 또다시 출근을 하고 있다.


처음이라는 순간은 서툰 것들이 모여 만든다. 직장에서 메일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울리는 전화는 뭐라고 받아야 하는지, 회식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은 처음의 순간도 달콤한 온기와 함께 버텨내고 몇 번의 시간을 더 보내면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처음이라는 서툰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사회에 속한 진정한 어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