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내가 살던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는 대학교가 있었다. 그 말은 즉, 집에서 30분 이내로 출퇴근할 수 있는 근무지가 꽤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포장마차, 고깃집에서 서빙을 주로 하던 나는 새로운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지원했다. 물론 지금은 커피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나는 쓴 약 같기만 하던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카페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지원한 것은 엄청난 도전 중 하나였다.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본 날, 당시 매장의 점장님은 나에게 카페에서 일해 보는 것이 처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일주일 동안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수습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 일주일 동안 출근하는 것은 무급이라는 말과 함께. 돈을 받지 않고 일주일이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르바이트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동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근무를 시작했다는 점장님의 말에 카페는 다 이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근무를 시작했다.
카페는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손님이 계속 있는 편이었다. 카페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포스기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문을 받으면서 음료를 전달하고 손님이 뜸한 시간 틈틈이 커피에 대한 교육을 들었다. 첫날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법을 배웠다. 그라인더로 원두를 분쇄해 포터필터에 넣고 템퍼로 평평하게 눌러준 다음 머신에 끼워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 추출 시간을 재서 습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 상태를 체크하고 그라인더의 입자 크기를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장님은 커피 맛에 진심이었다.
그다음으로 배운 것은 라떼나 카푸치노와 같은 음료에 들어가는 우유를 스팀 하는 방법이었다. 스팀 피쳐에 우유를 담은 다음 머신의 스티머로 우유를 데우는 것인데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을 내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했다. 이를 연마하기 위해서 스팀 피쳐에 물과 주방세제 한 방울을 담은 다음 거품을 내는 방법을 배웠다. 미세한 움직임에도 거품이 풍성하게 생기지 않거나 거친 거품이 만들어 지고는 했다. 그렇게 며칠간 계속해서 스티머로 고운 거품을 낼 수 있도록 연습했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이걸 반복했더니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점장님의 커피에 대한 열정에 연습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교육의 마지막 날, 드디어 나는 주방세제로 거품 만들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유를 사용해서 거품 만들기에 돌입했다. 초반에는 계속 실패했지만 그동안 주방세제로 연습한 효과로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점장님의 최종 승인과 함께 내 손으로 만든 커피를 처음으로 손님에게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자 뿌듯함을 느끼며 점장님과 함께 행복하게 근무할 내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점장님은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분이었다. 제일 심했던 것은 밝은 색상의 타일로 된 카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먼지 한 톨도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항상 나보다 먼저 출근한 다음 바닥이 더럽다며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어디가 더러운지 찾는데 한참 걸렸지만, 나중에는 눈을 감고도 문제인 곳을 찾아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연락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나는 대책을 마련했다. 가방에 박스 테이프를 넣어 다니며 문을 닫기 직전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떨어진 먼지와 머리카락을 일일이 제거한 것이다.
“오늘 본사에서 사람이 나온다던데.”
어느 날 출근해서 매장을 정리하고 있던 나에게 점장님이 말했다. 그동안 본사에서 누군가 방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터라 뭔가 긴장이 됐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점장님도 뭔가 불안해 보였다. 바빴던 점심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명은 본사 직원이었고, 한 명은 새롭게 오게 될 점장님이라고 했다. 점장님이 바뀐다는 사실에 당황한 나와는 달리 기존 점장님은 덤덤히 자신의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리고는 본사에서 온 직원 분과 이야기를 하러 카페 밖으로 나갔다. 그때 새롭게 올 점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그동안 일하면서 힘든 점 없었어요? 교육 기간에는 급여도 못 받았다던데.”
이전에 일했던 사람의 신고로 지금 일하고 있는 지점의 문제가 밝혀졌다고 했다. 우선, 수습기간이라고 하더라도 본사 지침으로는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데 점장님의 자체적인 판단으로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하고 있었던 발주, 재고관리, 정산 등의 일 대부분이 점장님이 원래 담당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점장님은 다른 업무는 제쳐둔 채 오로지 커피 하나에만 온 에너지를 쏟고 있던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본사에서는 이 지점의 점장님을 교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점장님은 박스에 담긴 짐을 들고 인사를 하며 문을 나섰다. 그 와중에 나에게 짐이 많다며 박스 하나를 건물 입구까지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같이 카페 문을 나서며 걸어가는 와중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위로를 건네기에는 너무 주제넘어 보였고, 그동안 왜 그랬는지 따져 묻기에도 상황이 애매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같이 이동하다가 건물 입구에 다 와 갈 때쯤 점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내 밑에서 일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나는 다른 데서 또 커피일 하고 있을 거예요.”
점장님은 마지막까지 커피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다른 건 몰라도 커피에 대한 열정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열정을 다른 곳에도 쏟았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점장님을 떠나보낸 뒤, 나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커피에 대한 열정이 전염되어 버린 것이다. 연습을 시키는 점장님은 없었지만 나는 라떼 아트로 하트를 그리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때의 커피에 대한 열정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내 의지의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열정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일을 열정적으로 한다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내 몸을 갈아 넣으면서 열심히 일하면 그게 열정적인 것일까? 열정이 어떤 모습이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스스로가 열정이라는 단어에 반응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하고, 조금 더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열정이 아닐까.
간혹 주변에서 우리에게 이런 열정을 강요하고는 한다. 하지만 열정은 누군가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할 때 쏟는 열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음식을 좋아할 수 없듯 열정도 그런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 돼, 한 번쯤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혹시나 한 곳에만 열정을 쏟느라 놓치고 있는 일은 없는지, 주변 사람에게 나만의 개인적인 열정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