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gstore. 우리가 흔히 드럭스토어라고 부르는 이곳은 약국과 편의점을 합친 매장을 뜻하는 용어로 약품, 화장품, 식품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국내에 드럭스토어 매장이 시작한 초기에는 여러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지금은 몇 개의 브랜드만 살아남아 있는 상태이다. 여전히 인기 있는 드럭스토어의 특징을 살펴보면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드럭스토어에서 근무했던 경험은 트렌드 파악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이 불러오는 엄청난 파장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내가 근무한 지점은 번화가에 위치한 그것도 가장 입지가 좋은 곳에 있었다. 면접을 보면서 들은 정보로는 전국에서 매출 top5에 들만큼 인기가 좋은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매출이 높으면 그만큼 판매되는 물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전 시간대에 일을 했던 내가 출근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매장 입구에 놓인 수 십 개의 대형 플라스틱 박스였다. 발주에 따라 매장에 입고되는 물건은 큰 플라스틱 박스에 여러 개의 제품이 뒤섞여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런 박스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게 박스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박스 선택이 중요했던 이유는 드럭스토어에서 판매하는 물건 대부분이 사이즈가 작고 종류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물건의 개수만큼 상품이 진열되는 위치와 보관 자리를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근무한 지 오래되지 않았던 나는 그 모든 제품의 위치를 외우고 있을 리 만무했다. 보통 하나의 박스를 선택하면 그 안의 물건을 책임지고 정리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어떤 박스를 선택하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이제 와서 솔직히 밝히자면 물건을 정리하려고 열었다가 빈 박스인척 몰래 다시 가져다 놓은 적도 몇 번 있었다. 도저히 그 박스의 물건들을 제대로 정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입고된 물류를 정리한 다음에는 고객을 응대하면서 제품이 진열된 매대를 청소해야 했다. 시간대별로 직원들이 구역을 나누어서 청소를 했는데 이것 역시 정해진 절차가 있었다. 구체적인 청소 방법은 진열된 하나의 상품을 앞부터 뒤까지 일렬로 쭉 빼서 바구니에 잠시 담아 준 다음 그 부분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로 닦아야 했다. 그리고 원래 위치에 물건을 다시 반듯하게 진열하면 비로소 한 줄의 청소가 완료되는 것이었다. 이걸 큰 매대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 매대를 청소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단순하게 청소를 하는 것이 고객을 응대하는 것보다는 쉬운 편이었다.
드럭스토어에는 다양한 손님과 본사 및 협력 업체의 여러 직원이 모여 매장을 북적이게 만든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드럭스토어에서 객관적인 상품 정보를 알고 싶을 때는 드럭스토어 브랜드의 유니폼을 착용한 직원을 찾는 것이 좋다. 가운을 입고 있는 등 복장이 다른 경우에는 판매하고 있는 제품 회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느 때와 같이 근무를 하던 어느 날, 매장 오픈 시간을 막 지날 무렵 한 고객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그 고객은 잠시 둘러보더니 빠르게 화장품 하나를 가지고 카운터로 왔다. 그리고는 제품을 결제한 다음 들어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매장을 나섰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일상이었지만 문제는 다음날 터졌다.
“우리 잠시 좀 볼까요?”
점장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함께 근무하고 있던 언니를 호출했다. 냉랭한 분위기에 근무를 하면서도 언니와 점장님의 대화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30여분이 흐른 다음 언니는 살짝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점장님이 근무하고 있던 전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때 점장님이 말한 이야기는 나를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전날 매장을 방문했던 한 고객이 매장의 불친절함에 대해서 본사에 클레임을 걸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날 근무에서 특별히 문제가 될만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점장님이 말한 고객 불만 접수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계산할 때 포인트 적립 여부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불만이 들어왔습니다.”
아니, 직원이 불친절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고작 포인트 적립 여부를 묻지 않아서라고? 나는 이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당시 매장에는 고객이 입장할 때, 고객이 쇼핑하고 있을 때, 고객이 제품을 결제할 때 해야 하는 멘트가 정해져 있었다. 형식적으로 하는 줄만 알았던 그 멘트 하나로 민원이 접수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 우리는 평소보다 더 많이 입고된 물건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객을 응대하면서도 사소한 부분은 놓친 채 물건 정리에만 온 신경을 쏟다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날 오픈 시간쯤 방문했던 고객은 브랜드의 vip 등급이었다. 그런 고객에게 포인트 적립 여부를 묻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하게 제공되던 서비스의 누락과도 같았다. 매일 하던 사소한 멘트 한마디가 고객에게는 중요한 서비스로 여겨졌던 것이다. 결국 이 일로 우리 매장은 다시 한번 전체 서비스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전 직원이 모여 업무 매뉴얼과 상황별 스크립트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만 했다. 심지어 점장님께서는 브랜드 본사로 방문해 이 일과 관련된 해명을 해야만 했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 그까짓 사소한 거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결과 매주 작성하는 문서에 덜 신경 쓰게 되고, 매일 하는 제품 검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결재를 올린 보고서에 오타 하나가 있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품 출고 전 미세한 흠집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일들이 쌓이게 되면 나중에는 결국 더 큰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 돌멩이 하나가 잔잔한 호숫가에 파장을 일으키듯,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일 하나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하게 여겨지는 일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 의미가 있다. 불필요하게 보이더라도 수십 년간 그 자리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시행착오로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겹게 반복되는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 과정들을 사소하게 여길수는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작은 업무가 전체 결과에 주는 영향은 결코 사소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