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젤리 살리기 프로젝트

by 셀앤서

나는 군것질을 매우 좋아한다. 심지어 밥은 굶더라도 빵이나 과자는 꼭 먹을 정도로 디저트를 즐기는 편이다. 이런 내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단언컨대 젤리 매장이었다. 지금도 있는 이 프랜차이즈는 봉투에 젤리나 초콜릿등 원하는 것을 담으면 무게당 가격을 측정하여 판매하는 곳이다. 지금도 나는 종종 들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다 큰 어른이 아이들 틈에 끼여서 젤리를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의 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러 온 척 연기를 하기도 할 만큼 군것질을 좋아한다.


부모님이 치킨집을 운영한다고 치킨을 자주 먹을 수 없듯 젤리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매장에서 근무한다고 젤리를 공짜로 얻거나 시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림의 떡처럼 젤리를 보며 일을 하다가 퇴근할 때 젤리를 살까 말까 고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했던 매장은 백화점 내에 입점해 있었는데 근무 시간대가 이른 시간이라 생각보다 고객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젤리 매장에서는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기본적인 고객 응대부터 매장의 청결 관리, 그리고 입고된 젤리 진열과 창고의 재고 정리까지. 특히 청결 관리는 매장의 바닥을 쓸고 닦는 것 외에도 벌크로 담긴 젤리의 통을 일정 주기마다 깨끗한 것으로 교체하고 수시로 닦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평소와 같이 젤리가 담긴 통을 교체하던 중 유독 판매가 잘되지 않는 젤리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분명히 지난번 통을 바꿀 때도 같은 양의 젤리가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큰 변화가 없는 상태였다. 수많은 종류 중에서도 이 젤리를 기억했던 이유는 내가 좋아했던 젤리였기 때문이었다. 직사각형 모양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를 가진 젤리는 쫄쫄한 식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겉면에는 신 맛의 가루가 잔뜩 붙어 있어 상큼함까지 갖춘 완벽한 젤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우리 매장에서는 이 젤리가 잘 팔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왠지 이 젤리도 세상에서 빛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색상을 가졌던 젤리는 겉모습 그대로 굉장히 중독적인 맛이라 한번 맛보면 다음에 반드시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에게는 좋아하는 젤리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불타올랐다. 그래서 이 젤리가 조금 더 많이 판매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젤리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때마침 창고에 있는 젤리도 많았고 유통기한도 길게 남지 않아 잘하면 재고도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젤리 살리기 프로젝트의 목표는 간단했다. 통에 담긴 젤리를 본 사람들이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작 전, 우선 매장에서 판매가 잘 되는 젤리의 특징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당시 매장에서 인기가 많았던 젤리는 미니 곰 젤리, 악어 젤리, 길게 말린 벨트 젤리였다. 미니 곰 젤리는 아이들이 한입에 먹기 좋은 사이즈에 상큼한 과일 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악어 젤리는 긴 사이즈로 마시멜로 같은 폭신한 식감과 주황, 빨강, 초록 색상에 따라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다. 벨트 젤리는 긴 모양의 젤리를 돌돌 말아 한 덩이로 판매했는데 새콤한 과일맛에 겉에는 흰 가루가 붙어 있었다.


이 젤리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인기 있는 젤리는 아이들이 먹기 편한 사이즈와 식감을 가지고 있거나 통에 가지런하게 담겨 있어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벨트 젤리는 내가 좋아하는 젤리와 비슷한 맛과 식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통에 담긴 비주얼의 영향인지 판매가 잘 되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나는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젤리는 총 4가지의 색깔의 있었는데 빨강과 파랑, 노랑과 초록으로 각각 앞면과 뒷면의 색상이 달랐다. 또한, 젤리의 사이즈는 작았기 때문에 전체를 일일이 정리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진열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우선 굴곡진 젤리 통의 제일 아랫면에 젤리를 부어 평평하게 깔아 준 다음 젤리를 쌓을 단단한 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젤리를 빨강 한 줄, 뒤집어서 파랑 한 줄, 노랑 한 줄, 또 뒤집어서 초록한 줄 이렇게 나란히 놓기 시작했다. 그러면 젤리통을 위에서 바라봤을 때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색상이 나란히 놓이게 되면서 가지런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진열할 때의 주의점은 젤리 통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통 입구의 뚜껑 부분만 최소한으로 오픈해서 재빠르게 라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뭘 그렇게 열중하고 있어요?”


손님이 없는 틈에 정신없이 젤리 줄 세우기에 열중하던 나에게 맞은편 매장의 매니저님이 물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젤리를 그렇게 심각하게 정리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색깔별로 가지런히 쌓여가는 젤리는 마치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정리되어 갔다. 젤리 하나의 두께가 손톱 보다 조금 더 두꺼운 정도였으니까 젤리를 몇 센티 쌓았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물거품처럼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손님이 가져온 젤리 봉투를 계산하려고 들다가 그만 쌓아놓은 젤리 통을 툭 쳐버리게 된 것이다.


다행히 통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강한 흔들림으로 두 시간가량 힘들게 쌓아 올렸던 젤리 탑이 무너졌다. 마음속으로는 절규를 하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한 채 계산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는 손님이 떠난 다음에야 처참한 젤리의 사고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젤리가 다 흐트러진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가운데 부분에 쌓아 올린 젤리들은 탄탄한 설계로 어느 정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번 젤리를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젤리 탑이 완성되었다. 정갈한 젤리를 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제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며칠 뒤, 오전 일찍 출근해서 젤리도 정리하고 매장을 청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번 정리한 젤리통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열된 젤리의 양이 눈에 띄게 많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통에 거의 가득 차 있었던 젤리가 어느새 절반 이하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나의 젤리 살리기 프로젝트가 이런 성과를 내다니 믿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젤리의 성공을 본 것이 기분이 좋아서 그랬는지 근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교대 시간이 되자 출근한 매니저님이 매장에 와서 나를 불렀다.


매니저님은 몇 년간 근무하면서 젤리를 저렇게까지 정리한 아르바이트생은 처음 본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면서 덕분에 재고 많은 젤리가 잘 팔리고 있다고 칭찬했다. 나의 집착적인 성격과 좋아하던 젤리가 만나 매니저님도 인정한 성과를 낸 것이다. 그날 매니저님은 매장에서 판매하는 비싼 과자 하나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사실 그동안 일하면서 먹어보고 싶었지만 비싸서 선뜻 사지 못했던 과자였다. 그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발걸음으로 퇴근할 수 있었다. 집에서 먹을 맛있는 과자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찾아서 행동하게 되고 일하는 그 순간 미친 듯이 몰입하게 된다. 젤리 매장에서의 경험 덕분인지 나는 일반적인 취업 준비가 아닌 조금은 다른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왔다. 그 결과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일을 쫒으며 살고 있다. 벌게 되는 돈이 얼마가 되었든 일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일을 할 때의 나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짜릿하게 움직이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물론 아직까지 이 일이 나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좋아하는 일을 해 볼 생각이다. 어차피 남은 평생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길을 쫒는 과정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간다면 결국은 다시 쌓은 젤리 탑처럼 나만의 탑도 완성되지 않을까. 그동안 한 번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가끔은 멈춰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짜릿함이란 어쩌면 복권 당첨보다 훨씬 더 좋은 기분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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