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화점에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서워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백화점이 주는 심리적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된 시기는 백화점에서 단기 근무를 하면서부터이다. 그 당시 일을 하면서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들만의 세상을 너무 일찍 알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나 할까.
명절 연휴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백화점 식품관에서 근무하는 선물세트 판매 공고를 발견했다. 물론 소고기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근무 시간과 급여가 꽤 괜찮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며칠 후 합격 연락과 함께 근무 시작 전 참석해야 하는 필수 교육 일정을 안내받았다. 교육 당일, 백화점 내 교육장에서 나를 비롯한 신규 근무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식품 위생과 고객 서비스 관련 교육을 한 시간 정도 받았다.
백화점에서 내가 판매해야 했던 제품은 국내 유명 산지의 한우로 사골부터 찜갈비용, 구이용 등 다양한 세트 구성이 있었다. 판매하기 전 걱정했던 부분은 국내산 한우세트라 아무래도 가격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근무를 시작하자 주변의 다른 선물 세트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일이나 건강기능식품과 같은 선물 세트가 몇 개나 팔리는 동안 단 하나를 팔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고객에게 열심히 설명하며 선물세트를 판매하기 위해 노력했다.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나는 일을 할 때에도 돈을 받는 만큼의 역할은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인지 어떤 일의 현장에서든 나에게는 열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일을 하면서 열정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순간이 있었다. 백화점에서는 몇 십만 원의 비싼 한우세트를 선뜻 결제하는 고객을 볼 때가 그중 하나였다. 비싼 제품이 많이 판매되면 좋은 것은 맞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일을 하고 있던 나와는 너무나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대리님, 오늘 바빠 보이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느 날처럼 선물 세트 판매 준비를 마친 뒤 백화점 본사 소속의 대리님께 질문했다. 그러자 대리님은 오늘 VIP 고객이 방문할 예정이라 사전 준비를 한다고 답했다. 백화점 VIP 라니. 살면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나오는 VIP의 모습을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경험은 없었던 터라 대리님의 말에 내 두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지금이야 SNS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상류층의 삶을 엿볼 기회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올라가십니다.”
얼마 후, 무전 소리가 들리더니 주차장과 연결된 에스컬레이터 양쪽 옆으로 본사 직원분들이 나뉘어 섰다. 그리고 한 고객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자 직원분들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고 곧 고객을 에스코트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근무하는 자리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VIP 고객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웨이브가 있는 짧은 기장의 머리에 보라색 셋업을 입고 한 손에는 핸드백을 든 고객의 모습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묘사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어떤 아우라와 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등급이 되려면 얼마를 써야 하는 거예요?”
VIP 고객이 다른 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던 나는 매장으로 돌아온 대리님께 물었다. 당시 백화점에는 VIP 등급도 3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분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이라고 들었다. 그런 나의 말에 대리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통 한 번에 몇 천만 원은 쓰고 가신다고 답했다. 몇 십만 원도 아니고 몇 천만 원 이라니. 가끔 월급날이 한참 남은 경우에는 몇 천원도 벌벌 떨면서 못쓰던 나에게 그 돈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정말 지극히 평범했던 아니 어쩌면 평범 보다 더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사회에서 본 또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VIP 고객을 본 그날은 이상하게 근무하면서 의욕이 자꾸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타인과 비교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유 모를 허무함이 자꾸만 몰려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고객들에게 한우세트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해야 했었고, 냉장고를 오가며 한우 세트를 판매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내 통장에는 백화점 단기 근무에 대한 급여가 입금되었다. 5일간 내내 한우 세트를 팔고 받은 20만 원 남짓한 금액이었다. 비록 상대적인 금액은 적을지 몰라도 이 돈이 나에게 주는 가치만큼은 결코 작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받게 된 시급 이상으로 한걸음 더 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적용되는 기준 중에는 상대적인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상대성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노동에 대한 대가이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어떤 가치를 주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돈이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흔히 돈을 잘 버는 일을 하면 좋은 직업이라고 말한다. 의사, 판사 등 사자가 붙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 이상한지도 모른 채 우리도 그런 가치관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 생각에 의문이 들고는 한다. 그 직업을 가지지 못한 인생은 정말 불행한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그동안 내가 쫓아왔던 일은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상대적인 기준에 맞춰 나를 판단해 왔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에서는 내가 하는 일을 위한 나만의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면 된다. 한 걸음씩 성장하다 보면 그 길의 끝에는 세상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한 가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지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인생에 적용되는 나만의 절대적인 기준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