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에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 중에 하나가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가족, 친구에게도 낯간지러워서 못하는 말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해야 한다니. 처음 전화를 받으면서 저 인사말을 해야 했을 때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못하는 일이란 없는 법.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 덕분인지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꿈 속에서도 할 만큼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홈쇼핑 콜센터에 전화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사이즈를 교환하기 위해서, 반품을 하기 위해서 등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 전화는 매분 매초 마다 쏟아졌다. 그리고 수많은 전화 중에서도 가장 자주 있었던 것은 배송 관련 문의였다. 주문한 상품이 언제 오는지, 그리고 왜 빨리 오지 않는지에 대한 불만 접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도대체 내 물건 언제 와!!!”
생각해 보면 어른인 우리는 아이보다 인내심이 적을 때가 있다. 정해진 날짜에서 배송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바로 전화를 해서 불만을 표출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배송이 지연되는 피치 못할 일들이 종종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송 기사님에게 사고가 났다던지, 물류가 허브에서 잘못 보내졌다는 등의 사정 말이다.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지만 고객의 입장인 우리는 그런 사정 따위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상담원에게 고성이나 욕설로 고스란히 드러내고는 했다.
콜센터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감정의 분류가 필요했다. 미안함, 감사함 등의 감정은 고객에게 표출하면서도 실제로 느끼는 당황함, 속상함 등의 감정은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 공감어를 사용하여 감정 표현은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나의 진짜 감정은 결코 드러낼 수 없었다. 혹시라도 감정적인 응대를 하면 어김없이 민원이 들어왔고 관리자에게 불려 가 잘못된 통화에 대한 질책을 들어야만 했다.
콜센터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근무 중 받게 되는 전화의 난이도가 앉게 되는 자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원리로 전화가 배정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특정 자리에는 응대가 힘든 전화가 많이 걸려오고는 했다.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도 자리를 바꾸는 날이면 다들 한 마음으로 피하고 싶어 했던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았던 어느 날,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할 최악의 통화를 하게 되었다.
“주문한 상품 반품 해주세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중년 남성이 구매한 상품의 반품을 요청했다. 인입된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주문내역을 확인하자 구매하고 시간이 꽤 오래 지난 제품이었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보통 제품별로 반품 기한이 정해져 있었다. 의류의 경우 라벨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2주 이내, 전자제품의 경우 전원 코드를 꽂지 않은 상태로 1주일 이내와 같은 세부 기준이 있었다. 여기에 비추어 보면 고객이 구매한 제품은 이미 반품 기한을 훌쩍 넘긴 상황이었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반품 기한이 지난 제품으로 확인됩니다. 추가 확인을 위해 제품의 사용 여부 여 쭤봐도 될까요?”
보통 반품 문의가 들어오면 제품의 반품 기한 다음으로 사용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특히 제품을 사용한 경우에는 조금 더 세부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가 필요했다. 이런 나의 질문에 고객은 제품은 사용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미 정해진 기한도 지났고 제품 불량과 같은 업체 과실이 아니라서 반품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심스럽게 규정을 설명하며 반품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고객은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 이름이 000이라고 했었죠? 00구 국회의원이랑 이름은 똑같으면서 당신은 왜 거기서 그러고 있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때 내가 들었던 말과 고객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고객은 국회의원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내가 콜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심장은 마치 100m 달리기라도 한 듯 빠른 속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쿵쾅 쿵쾅 쿵쾅.
“본인 그러고 있는 거 부모님은 아세요? 본인 낳고 미역국 드신 부모님 생각은 안 해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 모욕이 된 그 순간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나는 대학 생활 내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등록금과 용돈을 벌었고, 어른으로서 혼자서도 잘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그 한 마디가 나를 지탱하고 있던 자부심을 한 순간에 무너지게 만들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질러버리고 당장에라도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심각한 성희롱, 욕설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담원에게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한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고객은 마치 이런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단 한마디의 욕설도 없이 점잖은 목소리로 나의 인격을 조금씩 짓밟아가고 있었다. 어느덧 통화 시간은 2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고 파트장님은 메신저로 빨리 통화를 마무리하라고 나를 재촉했다.
결국 혼자서 처리가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파트장님께 메신저를 보냈다. 파트장님의 요청으로 업체에서는 특별히 제품을 회수하고 확인한 다음 반품 처리를 하겠다고 답했다. 고객에게 안내하자 당연히 되는 것을 계속 안 해준 것이라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더 이상 대꾸할 힘조차 없어 최대한 빨리 제품 회수를 위한 정보를 확인한 다음 반품을 접수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유난히 길고 힘들었던 이 통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고객과의 상담 이력을 남겼다. 이 통화로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지만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정신없이 밀려드는 콜에 다시 통화 버튼을 눌러야만 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00 쇼핑 000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이 찾아오고는 한다. 고객사에 방문했다가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몇 달을 노력한 프로젝트에 처참히 실패하기도 한다. 세상은 계속 흘러가지만 그 불행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춰 서게 된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섣불리 움직이려고 하면 불행이 가져다준 상처는 오히려 더 커져 버린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언젠가 달리고 있던 나를 결국 또다시 멈춰 서게 만든다. 그러니 때때로 불행이 우리를 가로막는다면 잠시 쉬어갈 필요가 있다.
그때의 나는 일하면서 받게 된 상처에 약을 바르고 충분히 쉬게 해주는 법을 몰랐다. 극심한 두통에 진통제 한 알만 먹고 한참을 스스로를 자책하며 시간을 보냈으니까 말이다. 그 탓인지 이 기억은 여전히 나를 그 순간으로 데려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덧나게 만들고 있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더 이상 상처가 커지지 않도록 나를 위로해 보려고 한다. 나는 존재 자체로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분명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