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일하는 것은 주변에서 선망의 대상 중 하나였다.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무료 영화 관람을 하거나 매점 할인을 받는 등 급여와는 별개로 복지가 매우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관에서 근무할 때 내가 제일 당황했던 것 중 하나는 분장을 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본사 배급이거나 제작을 지원한 경우 각 지점에서 이를 홍보할 것을 권장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등장하는 캐릭터로 분장하는 것이었다.
영화관에서 내가 했던 분장의 종류는 다양했다. 가장 난이도가 낮았던 것은 미키마우스 모양의 머리띠를 끼거나 산타 모자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었지만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산타 옷과 수염을 달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이벤트가 큰 인기를 끌게 되자 점장님은 점점 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분장의 수위도 높아져만 갔다.
한 여름 공포영화가 한창 개봉하던 어느 날 처녀귀신이 사진을 찍어주고 경품 추첨을 하는 룰렛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처녀귀신이 되어야 했던 주인공은 수많은 근무자 중에서 나였다. 아무도 귀신 분장을 하고 싶지 않아 해서 그 당시 제일 오래 근무했던 내가 총대를 메게 된 것이다. 하얀 소복을 입고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를 한 상태로 나는 로비에서 고객들을 응대했다. 귀신이 무서워서 공포영화도 보지 못하는 내가 귀신이 되다니. 나의 분장쇼의 포트폴리오는 나날이 다채로워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도 강한 충격을 준 분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무지개 색 뽀글이 폭탄머리 가발을 쓰는 것이었다. 이 머리는 당시 개봉했던 영화의 주인공인 동물 캐릭터의 스타일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봤을 때도 굉장히 웃기다고 생각했던 스타일이 실제로 눈앞에 놓여 있었을 때의 충격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무지개색 뽀글이 가발은 머리 전체를 다 덮을 만큼 컸다. 가발을 쓰면 내 머리카락은 한올도 보이지 않았고 가발과 오로지 내 얼굴만 둥둥 뜨는 모습이었다. 처음 가발을 건네받고 이리저리 아무리 만져보아도 가발을 쓴 내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는 도저히 사람들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그 무지개색 뽀글이 가발도 며칠 썼더니 마치 내 몸의 일부인 듯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가발을 쓴 분장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고객들은 영화관에 와서 가발을 쓴 우리의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발을 보고 영화가 재밌겠다며 예매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의 보람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너 여기서 일해?”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매표소에서 번호표를 정리하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다. 서로 이름과 얼굴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이였다. 학교에서 오며 가며 간간히 마주쳤지만 졸업 이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날, 영화관에서 그것도 하필 내가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있을 때 마주치게 된 것이다.
만약 다른 근무자가 있었으면 서둘러 정산실로 도망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평일 오전시간대라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 말은 즉, 이 꼴을 하고 어색한 사이인 동창에게 가서 내가 직접 표를 끊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기 싫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천천히 포스기 앞으로 갔다. 포스기 앞에 서자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해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친구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잠시 가발을 벗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다 본 상태라 늦었기도 했고 가발로 인해 머리가 엉망이라 벗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았다.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어떤 영화를 보겠냐고 물어봤다. 포스기에 발권 정보를 입력하는 내 모습 위로 계속된 시선이 느껴졌다.
“풉, 아니 그런데 그 가발은 뭐야?”
애써 일에 집중하는 나의 모습에 친구는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학창 시절 조용한 편이었던 내가 이런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다니 과거의 내 모습과 매칭이 안 되는 것이 당연했다. 친구와 함께 온 어머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왠지 모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는 f열 중앙이고 6층 5관이야.”
그 와중에도 프로정신을 발휘해 친구가 받을 수 있는 통신사 등의 최대 할인을 적용해 주었다. 친구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엄마의 팔짱을 끼고 매표소를 나섰다. 마지막까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 척을 하며 애꿎은 포스기만 계속해서 누르고 있었다. 친구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것을 확인한 뒤에야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당황스러움에 흥건하게 흐른 가발 속 땀을 닦아내야만 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영화관에서 하는 일이 창피하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결과 나에게 왔던 본사 직원 채용 추천의 기회를 고민도 없이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예상하다시피 그 이후 나의 커리어는 잘 풀리지 않았다. 수많은 지원서를 냈지만 서류를 넣는 족족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은 숨긴 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신경 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생에서 놓치게 되는 것들이 생기고는 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다른 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의 내가 놓쳐버린 기회가 아쉽기만 하다. 그 이후 종종 본사 직원으로 일하는 꿈까지 꾸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일을 하면서 우리는 때로는 초라하고 때로는 창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모습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일부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자신의 인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 생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