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사랑의 흔적을 기억하는지
끝난 사랑에게, 계절이 먼저 말을 건다.
우리가 남긴 건 말이 아니라, 조용한 침묵이었다.
기억은 언제나 계절을 타고 온다.
사랑은 끝났지만, 나란히 걷던 기억은 아직도 내 안을 따라 걷는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사람의 기억은 계절을 따라 걷는다.
잊은 줄 알았던 추억은, 바람과 함께 다시 지나간다.
끝난 사랑에게, 계절이 먼저 말을 건다.
사랑은 끝났다.
말로도, 침묵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놓았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절은 아무렇지 않게 그 사람을 데려온다.
낯익은 바람,
한때 함께 걷던 길목의 그림자,
해가 기울던 오후의 냄새,
무심히 스치는 모든 것들이
조용히 내 마음을 건드린다.
잊은 줄 알았다.
시간도 흐르고, 감정도 무뎌졌으니까.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그 사람의 기억은
화려한 단어나 수려한 표정이 아니라,
함께 걷던 침묵으로 남아 있었구나.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았던 순간들.
아무 일 없이 나란히 걷던 그 시간들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는 걸.
그 기억은 너무 조용해서,
한동안 듣지 못했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내 안 어딘가를
여전히,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지나간 사랑은
마치 골목 끝에 놓인 작은 빛 처럼.
멀리 있지만, 분명히 나를 비추고,
그 빛이 스며든 자리엔
그리움이라는 잔물결이 일렁인다.
그땐 몰랐다.
그 계절이 마지막이었다는 것도,
그의 침묵이 이별이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사랑은 끝났지만,
여전히 그 감정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끝난 사랑 앞에서
또다시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계절이 먼저 묻는다. 기억하는지.
그리고 나는
그 계절의 목소리로
그 사람을 다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