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신 ep.14 지우개

by Celloglass

아침부터 모두가 모였다. 밤새 울었는지, 잠을 설쳤는지, 몰골은 하나같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떠난다. 그러나 우리의 실험은 성공했다. 모두가 그 사실에 동의했다. 각자 이 길에서 가능성을 확인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지막까지 함께였다.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쓸었고, 미리 이전할 곳을 정한 상점들의 짐은 다 같이 옮겼다. 시작이 그랬듯 끝도 함께였다.


점심은 청년지원센터에서 다 같이 먹었다. 각자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신기하게도 오늘 얼굴에는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젊어서 회복이 빠른 것인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1층 부동산도 함께였다. 자식, 손주를 대하듯 따뜻한 눈빛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했다. 몇몇은 이미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좋은 조건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길의 주역들은 건물주들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자신들이 방치한 건물을 살려냈음에도, 정작 그들은 골목길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원망할 수만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한 것뿐이다.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경제 논리다.


문화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이런 진통은 반복될 것이다.


식사 후 우리는 다시 현장으로 내려가 정화작업과 원상복구를 시작했다. 그라피티 작업을 했던 학생들이 벽화를 지우고 있었다. 어디서 소식을 듣고 왔는지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오히려 고마워했다. 이곳에서 몇 달 동안 마음껏 그림을 그린 덕에 작가로 데뷔한 학생, 라이브 드로잉 초청을 받은 학생, 유튜브로 주목받은 학생들까지 나왔다.


그 골목은 그런 무대였다. 청년 창업가도, 그라피티 학생들도 모두 실험을 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서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나도.


재개발이 드리워지면, 그곳은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도시를 파괴한다. 그 어떠한 죄책감도 없다. 원주민들이 진정 원한 것은 넓은 길이었을까. 파란 버스와 지하철 역이었을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가격표였을 것이다. 재개발이란 단어는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지표가 돼버린다. 평생을 일군 그곳의 추억이나 기억들을 보상받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모든 걸 지워버린다.


지우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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