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신 ep.16 지도에 없는 마을

4부 땅과 사람 - 낯선 환대

by Celloglass

인구 소멸 위기 지역으로 지목된 산골마을에 도착했다. 기사로 읽었던 것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절반 이상이 빈집으로 방치돼 있었고, 밭들은 잡초에 덮여 있었다. 한때 고랭지 농업으로 활기를 띠던 마을은 이제 노인들만 남아 간신히 숨을 잇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생활 반경만 유지한 채 시간은 멈춰 선 듯했다.


차에서 내려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회관 앞에 모여 있는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셨다.


사진 몇 장 찍고 사라지는 도시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작은 공동체일수록 낯선 이를 경계하게 된다. 평생을 같은 얼굴과 밥상을 나눠온 분들이기에 낯선 이의 방문은 늘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귀촌이나 귀농에서 말하는 ‘텃세’라는 것도 어쩌면 이 같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일지 모른다.


나는 불편을 드리지 않으려 멀찍이 떨어져 마을을 둘러보았다. 사람 키만큼 자라 버린 잡초는 길과 집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고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이곳의 풍경은 귀신이라도 나올 듯 삭막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자연의 원형이 보존돼 있었고, 집들은 밭을 중심으로 고리처럼 둘러서 있었다. 넓은 밭은 방치돼 있지만, 새로운 화합의 장이 될 것 같았다.


잘만 다듬는다면 가능성이 있는 무대처럼 보였다.


당장 중요한 것은 나를 마을 사람들이 받아주셔야 한다. 도시에서처럼 돈과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결국 대형 프랜차이즈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골목에서 배운 방식대로라면, 이곳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마을 어르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당장은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무언가를 바꾸기보다, 천천히 이곳의 삶에 스며들고, 어르신들과 관계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오늘은 마을 분위기와 가능성만 확인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머릿속에 온갖 그림이 펼쳐졌다. 빈집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버려진 밭은 무엇으로 되살릴까. 무엇보다 이곳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머무는 마을로 만들 수 있을까. 사진만 찍고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발길이 멈추는 마을. 나도 한 번쯤 와보고 싶은 그런 곳을 만들고 싶다.


나는 오늘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환대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나를 밀어내는 듯했으나, 동시에 나를 불러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미 결심했다.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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