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신 ep.17 치트키

by Celloglass

나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젊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함이지 그들 삶의 터전을 빼앗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선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싫은 건 선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들의 선을 몰라줬다고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한다. 나는 그게 선이 아니라 강요이고 무례함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이 프로젝트 또한 마찬가지다. 내 의도와 방법은 그분들이 동의해 주시고 동참해 주셔야 바른 길로 갈 수 있다. 시작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전략은 없다. 무조건 찾아가는 것이다. 그분들의 삶에 내가 녹아들 때까지. 그래서 무조건 찾아가기로 했다. 임도길에 오르기 전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 한 박스를 샀다. 그리고 마을로 향했다.


사륜구동이 아니면 오르지 못할 임도길을 굽이굽이 올라 마을 초입에 다다르자 몇 분이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나는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렸다. 고생하신다고 인사를 드리고, 오는 길에 시원한 막걸리 좀 샀다며 종이컵과 함께 건넸다. “더우시니까 드시고 하세요.” 두렁 한쪽에 두고 다시 차에 올랐다.


시골마을에 오면 늘 마을 회관 앞 당산나무 밑 평상에 모여 계신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시는 것 같았다. 인사를 드리고 나도 평상에 앉았다.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질 즈음, 뒷자리에 있던 막걸리와 종이컵을 꺼냈다. “여기 오는데 어르신들 생각이 나서 시원한 막걸리 좀 사 왔습니다.” 평상 위에 올려놨다.

“이게 뭐라? 이거와 사 왔나?”


시골분들의 의심은 불쾌함의 표시다. 도시사람들이 그걸 불쾌함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분들은 도시 놈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공동체를 침해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늘 방어적이다. 익숙지 않은 억양과 무뚝뚝한 표정을 도시사람이 오해할 뿐이다.

“그냥 생각나서 사 왔어요. 아무 의미 없어요.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해서.”

“다 돌아가셨나?”

“네. 오래전에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나도 얼마 안 남았사.”


말이 섞이면 반은 성공이다. 그분들도 다 안다. 요즘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인생 경험치가 만렙인 분들이 왜 그걸 모르겠는가. 다 아시기에 막걸리도 받아주신다.


나는 이 마을에 대한 역사부터 듣고 싶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대머리 할아버지가 입을 여시면 곧 빨간 조끼 할머니가 끼어들고, 분홍 신을 신은 할머니가 이어받는 식으로 무한 반복이 이어졌다.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내게서 이방인의 느낌은 지워진 듯했다.


그럼 됐다. 오늘은. 나는 내일도, 그다음 날도 올 것이다.

온전히 이 마을의 가족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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