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신 ep.19 도시 촌놈

by Celloglass

오늘도 어김없이 마을로 향했다. 나는 이제 이 이름도 없는 마을의 아들이 됐다. 마을 진입 전 장에 들러 낫과 갈퀴도 샀다. 이곳에서 다시 시작할 생각에 신이 났다.


마을회관에 들러 어르신들께 인사를 건넸다. 오늘 아침에 만들었다며 냉장고에서 식혜를 대접에 내오셨다. 이방인으로 처음 발길을 들일때와는 전혀 다른 살가움으로 반겨주셨다.


고랭지 밭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빈집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잡초를 치우며 들어갔지만, 문제가 생겼다. 도시 촌놈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었겠나. 30분도 안 돼 온몸에 풀독이 올라 붉게 달아올랐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도망치듯 회관으로 되돌아왔다.

“니 그라고 갈 때부터 내가 다 알아봤드래.”


어르신들이 짓궂게 웃으셨다. 틀니가 빠질 정도로 크게 웃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나는 죽을 맛이었다.

"일단 웃통부터 벗구 찬물루다 싹 씻으라!"

"야야, 니는 퍼뜩 가서 된장 쫌 퍼오라!"

“행님, 된장 말구 쌀뜨물이 더 좋드래요."


나는 급히 등목을 하고, 된장을 발랐다가 쌀뜨물로 다시 씻기를 반복했다. 난리도 아니었다. 대머리 할아버지는 어디서 똥 냄새난다고 놀리셨다. 처음의 냉대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웃다가 울다가, 죽다 살았다.


결국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 어귀 사는 분께 소정의 돈을 드리고 벌초를 부탁드리기로 했다.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낫 하나 들고 패기를 부렸는지 모르겠다.


잠시 후 가려움이 가라앉을 무렵, 양봉 작업복 차림의 분이 예초기를 메고 올라왔다. 제초 작업도 장비빨이라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복장만으로도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제초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내부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며 살펴봤다. 목구조만 남기고 흙벽까지 모두 철거해야 할 듯했다. 썩은 목구조는 부분 교체하고 다시 실측을 할 예정이다. 마당은 크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담장은 다 허물면 된다. 고랭지 밭 자체가 앞마당인데 굳이 담장이 필요하랴.


아마 이 집은 일출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이다. 고랭지 밭이 배경이 되는 뷰.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날씨가 좋아도 사람들은 이곳을 찾을 것이다.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기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새벽의 풍광을 직접 보고 싶었다. 어르신들께 말씀드리니 저녁을 챙겨주셨다.


트렁크에서 야전침대와 침낭, 텐트를 꺼내 밭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하늘을 바로 보고 누우니, 이곳은 별천지였다. 서울 하늘에서는 잊고 살던 별빛이 쏟아졌다.


그렇게 별을 세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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