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ep.4 허가권자 지정감리

by Celloglass

2016년 건축법 개정으로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가 도입되었다. 건축주가 직접 감리자를 지정하던 방식을 허가권자가 대신 지정하는 것이다. 건축주와 감리자의 유착 관계를 끊겠다는 취지다.

단독주택을 제외한 소규모 주거 건축물과 분양·임대 목적의 공동주택이 대상이다. 다가구, 다세대, 연립주택과 아파트가 이에 해당한다.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가 운영된 현장에서 사고 발생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 현 문제점이다. 광주 학동 붕괴, 제천 화재, 화정 아이파크 붕괴, 검단 아파트 사고 등 굵직한 참사들이 잇따르면서, 정부는 감리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를 확대했다. 그러나 제도 운영 이후에도 사고 발생률은 낮아지지 않았다.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의 부실 원인으로는 감리 대가가 낮아 현장 투입 인원이 축소된 점이 가장 크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보면, 원 설계안에 대한 이해도가 낮거나 전문성이 부족해 발생한 원인이 더 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 과정 자체가 공정하다고 판단해서인지, 현행 제도를 다중이용건축물과 위험 시설 건축물까지 확대하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감리 실태를 감안하면 이 상태에서의 확장은 더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감리자를 원천적으로 공사 관계자들과 분리하려면 여러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첫째, 공공 감리제를 도입해 감리 업무 자체를 공공의 영역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합당한 보수를 지급하고, 정기적이고 실제적인 교육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양성해야 한다. 둘째, 감리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현행 법상 공사 중지 명령권이 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대형 공사현장에서 공사 중지를 시켜버릴 경우, 역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걸 감당할 수 있는 감리 회사는 없다. 그래서 감리자의 공사 중지 명령에 대한 면책 특권을 보장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제가 생기면 법부터 만들기 바쁘다. 무조건 해외 사례를 기준으로 더 높은 기준을 따라간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제도적 개선 의지나 시스템 정비는 보이지 않는다. 법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전직이 대부분 법조인이어서가 아닐까. 만약 그들이 사회적 경험을 두루 갖춘 여러 직종의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었다면, 법보다 내실을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법으로 강제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고 법 제정이나 강화로만 규제한다면, 그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것이다. 그건 다른 이름의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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