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ep.18 지하층

by Celloglass

2022년 8월 8일, 시간당 141.5mm의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신림동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을 포함한 일가족 3명이 빗물과 방범창에 막혀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날만 주민 7명이 사망하고 수백 채의 주택과 차량이 침수되었다.

신림동은 관악산 자락에 위치해 지대가 낮은 곳이 많아, 빗물 유입 시 침수 속도가 빠르다. 반지하 주택의 약 40% 정도만 물막이 시설이 설치되었을 뿐, 사망사고 이후에야 각종 대책들이 쏟아졌다.

서울시장은 고개 숙여 사과했고, 대통령은 반지하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현장 시찰을 했다. 2024년 3월 27일부터 정부는 지하층 거실 설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였다. 서울시도 지하층 주거 설치를 근절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기존 반지하 주택에 대해 10~20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비주거용으로 전환하고, 신규 건축허가를 즉시 금지하는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발표했다.

그리고선 본인들은 책임과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1970년대, 민간이 대피 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지하층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축법을 제정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방공호 목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산업화와 함께 서울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유입되면서 극심한 주택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정부는 주택난 해소 목적으로 비주거였던 지하층을 주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법화했고, 그때부터 반지하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반지하는 저렴한 임대료로 도시 빈곤층의 주거 형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발생하면 늘 법으로 강제한다. 이번엔 서울시장의 권위로 일몰제를 소급 적용해버렸다.

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지하층 거실 설치를 금지하지만, 지자체 조례로 정할 경우 예외를 허용하도록 했다. 모든 지하층을 일괄적으로 강제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 소급 적용할 경우 재산권 침해가 너무 심했을 것이다. 실제로, 침수 위험이 없는 단독주택을 신축하면서 지하에 서재나 홈짐, 다목적실 등을 계획하던 건축주들이 허가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무조건식 강제로 정작 취약계층의 서민들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바우처의 일환으로 이사 비용이나 월세를 지원한다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생활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쫓겨나는 결과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늘 문제가 생기면 법을 만든다. 그리고 강제한다. 정의로워야 할 법이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또 한번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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