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했지만 일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나 접근은 가능한 일이지만, 모두가 성실히 일을 해낸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이 일은 검증 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어느 사회에서든 마찬가지다. 다만 이곳의 검증 방식은 서류나 자소서 같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이 일은 힘들고 고된 일이며, 가장 밑바닥의 노동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나 역시 현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환경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왔다. 그들과 섞여 같은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다른 역할로 살아왔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본래의 역할이 잠시 바뀌었을 뿐이다. 달라진 건 없다.
새로운 역할로, 새로운 배역을 맡기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배역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지와 능력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일찍 일어났다고 하기보다는 잠을 설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스스로를 내려놓겠다는 판단은 빨랐고, 옳은 결정이었지만 현실에 대한 부정까지 쉽게 잠재워지지는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마음먹은 일은 시작해야 한다.
오늘 미루면 내일도 없다.
새벽 5시, 미리 검색해 두었던 인력사무실로 향했다. 바람은 매서웠고 손과 귀는 베일 듯 아팠다. 그동안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인력사무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새벽 6시가 넘어도 문이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더 큰 길가 사거리로 발걸음을 옮기다 불이 환하게 켜진 사무실을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일을 좀 구할 수 있을까 해서요.”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 사장님이 홀로 자리에 앉아 계셨다.
“지금이 몇 신데 이제 와. 지금 다 나갔지.”
말투는 포스만큼이나 단호했다.
“일 나가려면 다섯 시 전에는 와야지.”
처음이라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래도 쉽게 돌아서고 싶지 않았다.
“제가 처음이라 잘 몰랐습니다.”
“일 생기면 연락 주세요.”
이수증과 연락처를 남겼다.
허무했다. 첫 발걸음은 무거웠고,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컸다.
서류를 정리하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바람은 더 날카로워졌고,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 멀리 안 갔으면, 잠깐 올라와 볼래?”
“네.”
급히 3층까지 뛰어 올라갔다.
하늘이 도운 걸까, 아니면 시험이었을까.
원룸 4층에서 아파트 5층으로 이사를 하는데, 가족들을 도와 짐을 나르는 일이었다. 두 건물 모두 엘리베이터는 없다고 했다. 무슨 오기였는지, 나는 바로 하겠다고 답했고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나는 어떻게든 인력사무소 소장님의 눈에 들고 싶었고, 무엇보다 일을 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날의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소장님의 신뢰를 얻게 됐다.
그렇게 보통 인부의 삶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