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도감 #.005

신경전

by Celloglass

지금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건축학과와 건축공학을 분리해서 학생들을 모집한다.


건축학과는 국제인증을 기준으로 5년제.
건축공학과는 4년제 과정을 이수한다.


건축학과는 주로 ‘건축사’가 되고픈 학생들이 지원하며,
건축공학과는 ‘건설회사’나 ‘건축구조공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지원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출연하셨던 고(故) 배우는,

건축공학과 출신이었을 것이다.

‘건축구조기술사’ 역할을 연기하셨다.


같은 건축을 전공했지만,
주 관심사가 시작부터 다르므로
공사에 반드시 필요한 도면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늘 안타까운 부분은
건설사 직원들이 도면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용을 파악 못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 권의 도면은 책과 같다.
목차가 있고,
서론-본론-결론,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된다.


이 구성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하면,
내가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거나
한 부분을 확대해 사용한다.


현장 생활은 늘 고되고 바쁘다.


나도 이 일만 평생 해오고 있는데, 왜 모르겠는가.


내 얘기는
도면 전체를 봐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 부분은 현장만 탓할 일도 아니다.

때론 그들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앞뒤 안 맞는 도면과 씨름하며
늦게까지 퇴근하지 못했던 경험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믿음이 상실돼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원칙은 전체 도면을 파악하는 데에 이견이 없어야 한다.


문제는
최종 책임자,
공사현장 총괄자가
도면을 부분적으로 봤을 때 생긴다.


과거에는
1학년 때까지 같은 수업을 들었었다.
2학년 올라가기 전, 건축학과·건축공학과를 선택해 진학했었다.


대부분 ‘조형 수업’이나 ‘설계 1’ 수업을 듣고 나면
스스로 자기 길을 정한다.

(건축학과는 인원을 제한해 선발하므로, 설계 수업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학생들이 공학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열정이 낮다고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건설에 재능이 있어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며,

그 역할 또한 중요하다.


최소한 현장에서는
도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배치되면
설계자 입장에서는 대화가 편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엔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문제는

가설기둥이다.


아마 콘크리트 속으로 매립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일부 도면과 상이한 부분은
‘시공오차’라 주장하려 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는
‘시공오차’라는 말을
일종의 인간미 넘치는 예외 조항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공오차는 합법적인 경우를 전제로 한다.
모든 걸 덮을 수 있는 조커 카드가 아니다.


철저히 그 가설기둥과 가설보를 이용했다.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가설기둥과 가설보를 활용하면
공기(공사기간)와 물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곰의 아이디어일 수도,
아기 곰의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감리가 못 봤을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연세가 많으셔서 그러셨을 거다.
진짜 못 봤을 거다.


... 난 믿지 않는다.


난 양심상 그렇게 얘기는 못 하겠다.
그래서 나는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나는 감리자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내 현장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


이 상황을 그냥 관망한다면
그들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같은 방법으로 대처할 것이다.


아마,

곰이 축구부원들 모아놓고,

무용담처럼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 정신 나간 건축사 하나가 난리를 쳤는데,
그냥 잘 넘어갔어.”
“구청에서도 아무 문제없다고 했는데,
걔 혼자 난리 쳤지.”
"꼭, 뭣도 모른 것들이 건축사라고 설친다."


그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


더군다나
건축주 또한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건축주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건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나의 존심이다.


이전 04화그림자 도감 #.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