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검증
네 번째 미팅.
이제 새벽에 일어나 비행기 타는 게 너무 힘들다.
오늘도 성과는 기대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빠지면 곤란한 날이다.
이슈는 늘 같다.
공사비, 설계 변경, 지하층 가설 기둥.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시공사 본사에서 직원들이 내려온다고 한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단다.
수개월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내가 버티니까 본사 직원들도 납셨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참 보기 드문 발 빠른 대응이다.
회의가 시작됐다.
공사비.
설계 변경.
그리고 드디어, 지하층 가설 기둥 이슈가 거론됐다.
현장소장이 말했다.
“당시 공사 진행 시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예상돼,
현장 판단 하에 구조적으로 보강한 기둥입니다.”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투자운용사 팀장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대표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말했다.
“언제부터 현장 소장 판단 하에 구조 보강을 하셨나요?”
“구조기술사나 건축사에게 의견은 구하셨나요?”
“도대체 어떤 근거로 보강을 하셨습니까?”
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회의는 더 이상 무의미했다.
모두 현장으로 향했다.
나는 혼자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감리원과 감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축사님 판단이 맞습니다. 틀리셨다는 건 아닌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세요.”
연배로 보면 나보다 수십 년은 선배일 것이다.
곧 은퇴를 앞둔 감리자께서,
나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셨다.
나는 대답 없이 예의를 지켰지만, 속으로는 화가 났다.
감리자가 감리원만 상주시켜 놓고,
현장을 한 번도 둘러보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시공사는 건축과 타 분야로 취급되어 동질감이 없다고 하지만,
감리자는 그게 아니지 않나.
같은 건축사다.
선배 건축사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만약 내가 현장을 보지 않았다면?
“그건 감리 책임입니다. 저와는 상관없습니다.”
그 한 마디로 넘어갔다면?
지금처럼 수십 명이 모여
그 기둥 하나를 두고 의논이라도 했을까?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테니까.
실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윤리 의식,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거주에 불편함이 없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