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감리 맞아?
분양건축물은 일반 건축물보다
감리자에게 부여된 권한이 훨씬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공사가 온갖 입발림으로
설계변경 요청서를 제출하더라도,
선심 쓰듯 사인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현장의 설계변경 요청서는
장황한 설명으로 현혹할 뿐,
타당성은 없었다.
사인을 한 번 해줄 때마다
축구부원들이 온갖 비위를 맞춰줬을 것이다.
본인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겠지.
대통령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감리자도 아니면서.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나는 분노한다.
같은 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건 미래 후배들의 밥줄을 끊는 행위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명백한 범죄다.
그런데 이들은 죄책감이 없다.
건설현장에서 ‘감리단장’이라고 적힌 안전모를 쓰고
땀 흘리는 노동자들 사이를
우쭐거리며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나는 감리단장이야.”
그랬겠지.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가장 큰 권한이 주어졌을 때.
그건 공포다.
하지만, 그 공포는 일반인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아직 이 현장의
지하층 가설기둥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몰랐을까?
이쯤 되면,
몰랐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감리자는 현장에 아예
안 와봤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
과연 억지일까?
이 현장에서
누구 하나만의 잘못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다.
둘러보면 수없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설계자에게는 그 권한이 없다.
경력으로 보면
이 분야 베테랑이라는 이들이 모여서
잘못된 시공을 지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 하나였다.
“구조 보강.”
그뿐이었다.
시행사에서 나에게 자문을 구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합당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시행사는 망설였다.
그들은 복잡한 눈치였다.
“소송이 길어지면 공사기간을 지키기 어렵다.”
“사업 자체를 망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은 고발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말하고 싶다.
그때가 바로잡을 최적의 시기였고,
현장 기강을 바로잡을 최고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도,
결국 숫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분양 수익.
그들도 같다.
집합 건축물의 주인이
자기들인 줄 안다.
여기 모인 모두가,
진짜 이 건물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