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
직업윤리.
특정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행동 규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만의 직업윤리를 지킬 때,
비로소 사회는 온전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게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소한 게 아니다.
내가 하는 이 일도 마찬가지다.
건축주부터 현장 청소하는 사람까지,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윤리를 지킬 때
비로소 한 채의 건물이 완성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찌 보면 가장 기본일 수 있다.
동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
하나라도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그래서 나는
직업윤리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현장에서는 그 윤리를 찾기 어려웠다.
시행사도,
시공사도,
감리도.
서로의 이익과 편의만을 계산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중심을 잡아주던 건
투자운용사였다.
다행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시행사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감리의 고발.”
시공사의 무리한 설계 변경 요구에
시행사와 투자운용사 모두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그건 결국 말 뿐이었다.
이후,
시행사와 투자운용사에서 승인한 설계 변경을 위해
관할 구청을 찾아 협의를 진행했다.
이제 현장을 둘러보는 건 일상이 돼 버렸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계 변경을 논의하던 지점을 찾았을 때,
이미 시공이 진행된 상태였다.
설계변경안이 관철되지 않은 곳에는
자재들이 이미 현장에 반입되어 있었다.
그들은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설계 변경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만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는 건가?
지속적으로 현장을 방문하겠다던 시행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누구도 자재 승인을 하지 않았는데,
감리자는 왜 사인을 했는가?
혹시 아직도 현장에 나오지 않고
감리원에게 맡겨두고 있는 건가?
현장 상주 감리원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인가?
모든 게 의문이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그들이
죄의식 없는 공범처럼 보였다.
서울로 돌아왔다.
보통 설계자는 현장을 다녀오면
힘을 얻는다.
수많은 시간 동안 고민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잘 구현된 걸 보면
희열을 느낀다.
저 부분은 잘 시공되었을까?
모형으로 구현해 보내고,
3차원 이미지로 전달하며
설계자의 애착이 들어간 공간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내 욕심 때문에.
그게 내 직업윤리였다.
하지만 이 현장은
그 모든 걸 짓밟아 버렸다.
내 감정은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힘은 빠졌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됐다.
설계자가 감리를 직접 수행하지 못할 경우,
법적으로 그 어떤 제재도 할 수 없다는 걸.
본 사업지는
설계자가 감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지역 업체에 감리를 맡기도록
조용히 압박한다.
법적 근거는 없다.
무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상상 이상의 텃세와
인허가 단계에서 압박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말한다.
지역 상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법에 없는 공공기관의 소신이
진짜 중요한 것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설계자는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불편 해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