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전족 Urban-binding #9

ep.8 추억을 렌탈하는 시대

by Celloglass

우리는 새로움 앞에서 기억은 흐려지고,

철거 앞에서 추억마저 지운다.


199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됐다.
우리는 역사를 치욕으로만 이해했고,
감정을 이입하듯 폭파하며 없앴다.


기억되어야 할 장소,
잊지 말어야 할 역사.


우리는 너무 쉽게 지운다.


오래된 거리의 카페를 찾아가고,

낡은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어릴 적 본 듯한 소품에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는다.


그러면서 집 앞 풍경은

낡은 건물 대신 반듯한 새 브랜드 아파트로 바뀌길 바란다.

마트가 가깝고, 역세권이 되고,

도로가 넓어져서

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 기대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아 자연의 풍광을 건물로 채운다.


청라,
영종,
송도.

국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매립을 통해 국토를 넓혀,
경제활동의 중심이 옮겨간다.


그 결과,
구 도심은 버려진 듯 잊힌다.

재개발 구역에 묶여 10년 넘게 기다린 곳들이

이제는 해제를 외치며 아우성친다.


새로운 장소가 생기면
기존의 새로움은 불필요하다 생각한다.


낡은 것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건 아닐까.


시간의 기억,
추억의 흔적,
우리는 너무 쉽게 버리고, 잊는다.


공간을 살리는 리모델링은
누군가의 로망일 뿐,
현실은 철거로 일관된다.


공간의 인식이
장소에 대한 존중보다
부동산 가치에 있는 건 아닐까.


기억과 추억보다

현실이라는 자기 합리화로
가치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내 부동산은 부를 창조해야 하는
경제활동 수단이어야 한다.


내 돈으로 장소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내가 가서 추억하고 기억할 공간은
내 공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공간이기를 바란다.


장소성과 추억이 있는 거리에서는
연인과 가족이 손잡고 걷고,
어릴 적 보았을 법한 자전거로 달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집 앞에는
지하철이 연장되어야 하고
파란 버스가 지나가야 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은

인생의 최대 숙원사업처럼 여겨진다.


늙어서는 대형병원 근처에 살고 싶어 하면서도,

앰뷸런스 소리는 내 삶을 방해하면 안 된다.


이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하면
패배자로 도태되는 것처럼 느낀다.


나는 수년, 수십 년 전 선견지명으로
이곳에 이사 왔으니까.


재건축과 재개발은 도심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침 등굣길에도,

주말 외출길에도


아이들의 눈에는 크레인과 공사 가림막의 풍경이

'우리 동네'로 각인된다.


어쩌면 유치원생에게
‘우리 동네를 그려보세요’라고 하면
공사현장을 그릴지도 모른다.


한강변 스카이라인은
풍경이 되기도 전에
새로운 도전자를 맞이한다.


그들은 매번 최고 매매가를 갱신하며
기네스에 도전하는 듯하다.



우리의 주거는
리모델링을 시도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새로 짓고,
새 브랜드를 입혀
이 동네 ‘대장’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입주자들이 뭉친다.


아이의 성장 기록보다
이 집을 상속했을 때의 가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추억은
다른 이의 장소에서 찾는다.


장소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보존할 수 있다면,


그 공간은 내 공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keyword
이전 08화도시의 전족 Urban-binding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