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상업지역
도시의 땅은 저마다의 옷을 입고 있다.
주거지역, 공업지역, 상업지역, 자연녹지지역…
각기 다른 역할과 성격을 부여받아
적재적소에 배치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공업지역 한복판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서고,
상업지역에도 ‘주상복합’이라는 이름으로 주거시설이 섞인다.
그럼에도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을 유지한다.
주상복합은 주거 외 용도를 반드시 포함해야 하며,
100% 주거시설은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시는 상업지역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가로활성화’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저층부에 상업시설로 용도변경 시 다양한 해택을 주는 제도다.
업무시설이 밀집한 곳에 ,
저녁이 되면 거리가 텅 비는 현상을 막겠다는 취지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상업지역에 주거시설은 제한하면서,
퇴근 후 사람 없는 거리를 살리겠다고
가로활성화를 조성한다는 게 말이다.
사람들은 퇴근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상업지역은 여전히 어둡고, 제도의 취지는 빛을 잃는다.
결국 현 용도지역 설정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밤거리를 밝히는 게 중요한 시대라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거시설을 허용하면 된다.
사람들이 모이게 하면 된다.
현시대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야근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삶의 중심이 직장에서 가정으로 옮겨간 시대에
업무·상업 중심의 상업지역은
더 이상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답을 찾아야 한다.
공업지역과 상업지역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존 법과 계획 안에서 재정비하려는 시도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제는 도시계획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지역지구의 정의와 이름부터 재해석해야 한다.
상업지역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이름을 바꾸고 용도를 새롭게 설정하라.
특성에 맞게 더 높은 용적률과 높이를 주고,
그 대신 더 많은 세금을 거둬라.
고급빌라 한 채가 수백억에 거래되는 걸 막지 마라.
그 세금으로 공공에 재투자하면 된다.
특혜라고? 맞다.
그러나 특혜는 세금으로 환수하면 된다.
고층 스카이라인에 살고 싶은 사람,
수백억짜리 집을 사고 싶은 사람에게
그 선택을 제공해라.
그들의 기회비용이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됐을 때
더 가치 있다면, 왜 막아야 하는가.
경제활동의 공정성을 위해
주식 시장의 모든 종목 가격을 동일하게 만들 수는 없다.
전 국민 재산의 대부분이 주거에 묶여 있는 현실에서
이 불균형을 인정하지 못하면,
사회는 창의성을 잃는다.
주거복지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특혜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기회를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는 수단으로 전환하라.
그 돈을 공공시설과 불량주거 개선에 재투자하라.
지금, 도시계획을 재설계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