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분양 제도
70~80년대, 주택 공급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도입된 선분양 제도는 여전히 우리 주거 공급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선분양 제도는 아파트를 짓기 전에 미리 계약하는 방식이다. 계약금을 내고, 중도금을 나눠 내다가 입주 전에 준공금을 납부한다. 건설사는 중간중간 들어오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공사비로 조달해 공사를 진행한다. 자기 자본을 줄일 수 있어 여러 현장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어이없는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직 보지도 않은 물건을 ‘잘 지어 달라’며 돈을 모아 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뭘 믿고?”
아파트가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평가나 비교 없이 만족해야 했다.
분양사무실에서 계약만 해도 곧 대한민국 최고의 주거 형태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축하한다고 선물도 주고, 상품권도 줬다.
그게 다 자기 돈에서 나간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파트 층고는 과거 2.8m에서 2.85m, 2.90m, 2.95m로 변해왔다.
건설사는 ‘최적의 시스템’이라는 명목으로 공사비를 절감하며 늘 최소한의 것들로 공간을 채웠다.
실내 천정고는 한때 법정 높이인 2.1m를 고수했으나 현재는 2.3m가 일반적이다.
방과 거실에 천장형 에어컨이 필수가 되면서 층고는 2.95m까지 올라왔다.
분양시장이 과열되자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거실 창 앞에 선 유명 연예인이 곧 브랜드가 되었고, 브랜드는 곧 ‘내 집’의 상징이 되었다.
건설사 이름으로 짓던 아파트는 이제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
공사 중에도 사람들은 매일 현장 앞을 지나며 내 집이 잘 지어지고 있는지 먼발치에서 지켜봤다.
주말이면 가족끼리 현장을 찾는 모습도 흔했다.
내 삶의 중요한 집이니까.
건설사는 더 나은 브랜드를 입히고, 더 좋은 집을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광고는 광고일 뿐이다.
‘최적의 시스템’은 결국 최소한의 돈으로 공간을 완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빌라가 아파트보다 천정고가 높은 경우도 많다.
언젠가부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모두 최소화하기 시작했다.
건설사 입장에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 집을 믿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분양을 받으면 카페나 단톡방을 만들고, 정보를 공유한다. 사전점검에서 하자가 발견되면 단체로 입주를 거부하기도 한다. 사설 대행업체를 고용해 점검하는 일도 흔해졌다.
이 모든 것은 선분양 제도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변화는 없다. 건설사 입장만 대변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선진국에서는 철저히 후분양 제도를 채택한다. 우리처럼 선분양 제도를 쓰는 곳은 아시아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물건을 사도, 차를 사도 완성품을 보고 돈을 지불하는데, 그보다 수십~수백 배 비싼 집은 보지도 않고 돈을 지불한다. 얼마나 우스운 광경인가.
선분양 제도는 건축허가 이후 분양신고를 하고 바로 분양을 진행한다. 허가도면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생략돼 있다.
허가는 법이 정한 조건에 맞는지를 판단하는 절차이지, 수분양자를 위한 도면이 아니다.
분양 이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숨기거나 감춰도 일반인은 알 수 없다. 애초에 그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델하우스의 화려함은 보이는 부분일 뿐이다. 더 자세히 보려 하면 촬영을 거부한다. 연출된 공간에 만족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작은 글씨로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연출된 공간’ 또는 ‘공사 중 변경 가능’이라는 문구다.
이는 스스로도 완벽하지 않은 물건을 팔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미리 고지했으니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사기 분양을 주장해도 건설사를 이기기는 어렵다. 변호사들의 법률 검토를 통한 법적 대응 지침과 체크리스트를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한 번 집을 사는 수분양자가 이들을 이기기는 어렵다.
애초에 공정하지 않은 거래다. 분쟁이 생겨도 이미 모든 대비가 끝난 싸움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수분양자를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불공정한 게임을 계속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수분양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할지는 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