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전세 ep.9

LH매입주택

by Celloglass

보증보험이 가입되지 않은 집에 살았던 사람들.

그들에게 전세사기란, 계약서 위의 몇 줄이 아니라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다.


한 번 빠지면 스스로 기어 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전세금이 묶여 있다.
계약이 끝나도, 집을 비워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법적 절차는 길고 복잡하다.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사기꾼이 숨긴 재산을 찾아내지 못하면 종이 한 장이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차선책을 내놨다.
LH가 피해 주택을 매입해, 피해자에게 무상으로 최대 10년 거주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형식만 보면 파격적이다.
집을 뺏기지 않고, 최소한의 주거 안정을 보장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집이 아니다.
그 집에 묶여버린 수천만 원, 많게는 억대에 이르는 전세금이다.
집은 여전히 있지만, 그 안의 돈은 사라졌다.


무상 거주는 빚을 갚아주지 않고, 무너진 신용을 회복해주지도 않는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 대출이 막혀버린 사람에게는 ‘10년 거주권’이 아무 의미가 없다.

LH의 매입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
전세보증보험이 가입되지 않은 집도 매입 대상이지만, 그 이전의 채무 관계까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소유권이 공공으로 넘어가도, 그 전의 보증금 반환 문제는 여전히 전 집주인 몫이다.


결국 피해자는 집은 지켰지만, 돈은 잃은 채 살아가야 한다.

게다가 LH 매입은 시간과 조건이 걸린다.
주택 가격 감정, 매입 심사, 계약 절차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그 사이 집은 방치되고, 건물 상태는 나빠진다.
또한 모든 피해 주택이 매입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불법 건축물, 소유권 분쟁이 걸린 경우, 감정가와 시장가 차이가 큰 경우 등은 제외된다.


이마저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형평성 논란을 낳는다.

피해자들은 말한다.
“집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제 돈이 필요합니다.”


그 말 속에는 상실감, 배신감, 그리고 제도에 대한 불신이 묻어난다.


정부는 주거 안정을 이야기하지만,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원상회복’이다.


그들의 재산을 다시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LH 매입주택 제도는 분명 필요하다.


쫓겨날 위기에 놓인 사람에게 당장의 집을 지켜주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돈을 잃은 사람에게 집은, 빚을 안고 사는 공간일 뿐이다.
마음은 이미 떠났고, 남은 건 ‘10년짜리 대기실’이라는 사실뿐이다.

결국 이 제도는 ‘피해 이후’를 관리하는 장치다.


‘피해 이전’을 막는 장치는 아니다.
보증보험 의무화, 임대인 검증 강화, 전세 제도 구조 개선 없이는 같은 일이 반복된다.


LH가 집을 사들이는 속도보다, 전세사기 피해는 더 빨리 늘어날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집이 아니라, 빼앗긴 돈이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그 돈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공공이 집을 매입해도
그곳은 여전히 사기꾼이 남긴 그림자가 드리운 공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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