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때는 연기처럼, 끝나면 바람처럼
며칠 동안 사무실을 통째로 비웠다. 불까지 꺼둔 채, 어떤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고, 설득하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마 본사에서도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자리를 피했다.
드라마 유어 아너 속 김명민 배우의 대사가 떠올랐다.
“항상 일을 크고 복잡하게 만드는 건 거짓말이야.”
그 말은 정확히 지금의 내 마음이었다.
그들은 또 어떤 변명을 내놓을까.
영종도로 향했다. 건물도,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머리를 식히기에 최적의 장소다.
그러다 전화를 받았다. 피한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고, 마무리는 해야 했다.
그는 여러 현장을 관리하는 담당자라 했다. 이번 문제 현장도 그중 하나라고.
사과할 일이 있고, 직접 대화를 하고 싶다 했다.
아마 그들은 사무실 문이 잠겨 있고 불이 꺼진 걸 보고, 한참을 기다리다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가 책임자라면, 모든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기둥 절단 결정도 그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야 나타나 사과인가.
다음 날, 내가 정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이 지긋한 분과, 키 큰 사람이 나와 있었다.
명함을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눈 뒤, 그들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잘못이 아니라던 그들이었다.
가설기둥은 현장판단으로 구조보강한 거라 주장했다.
대형 건설사가 체계도 없나, 기술 검토도 안 하단 말인가.
나는 해결될 거라 믿지 않았다.
그저 이 일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뭣도 모르는 건축사 한 명이 고집을 부렸다’ 정도로만 생각하겠지.
그들에게 과정은 의미 없다.
완공이 곧 목적 달성이다.
장인정신도, 기술 습득 의지도, 직업윤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월급이 하루라도 밀려야 비로소 반응할 사람들 같았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이번만큼은 반성하길 바란다.
당신들은 후배들에게, 시행사·투자운용사·수분양자들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결국 대표이사 명의의 서류를 받고, 사용승인 접수를 했다.
분이 풀린 것도, 만족한 것도 아니다.
단지 더는 붙잡을 제도적 장치가 없었을 뿐이다.
만약 내가 감리자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아쉬움으로 그날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