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도감 #.017

사용승인

by Celloglass

사용승인 접수를 한 달 정도 앞둔 어느 날

투자운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하층 가설기둥을 철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사과 한번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조보강이 맞다고 우기던 곰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철거한단다.


안 해도 되는데 원만한 사용승인을 위해 선심 쓰듯이 철거한다고 했나 보다.


실수는 할 수 있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실수 이후 행동에 따라

용서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


공사 중 잘못된 부분을 감리나 시공사가 아닌 제3자가 찾아내면 잘못된 건가?


오히려 곰은 내가 자신들의 공사를 방해하는 것처럼 떠들었나 보다.

별거 아니고 사용승인 때 처리하면 되는 건데 유난을 떨었단다.


온갖 험담과 비난으로 일삼던 곰.

그 곰이 자발적으로 철거하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나 보다.


지하 4개 층높이의 철골 기둥을 자르는 거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바로 잡는 다니 다행이긴 하다.


이번을 반면교사 삼아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아직 더 남은 게 있다.


임.의.시.공


시행사와 투자운용사의 승인 없이 자재를 변경하고 설계변경 없이 공사한 부분이 있다.

이들은 공사기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은 알고 있다.


본인들이 시간을 끌면

시행사도,

투자운용사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아는 것이다.


나도 안다.


그들이 절대로 번복 안 할 거라는 것을.

그 부분은 구두로라도 설명했다고 우기려고 할 것이다.


시공사가 일반인이게

변경하시면 공사비도 절감되고 좋습니다.

이 자재는 지금 발주해도 1년 이상 걸립니다.


온갖 근거 없는 말들로 설득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에 다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서류를 달라고 한다.

승인서류


내가 좀 더 전문가적으로 다가갈수록

그들은 나와 멀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체 이메일에 설계자는 빠져있다.

늘 하는 수법이다.


나는 “뭣도 모르는 놈” 아니었던가.


사용승인 접수가 다가와도 곰은 나에게 전화 한 통 없다.


공사 직원들

공무 과장

본사 직원들까지 돌아가면서 전화를 한다.


업무를 마비시켜 버린다.


일부러 그럴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것처럼.


나도 이제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전체 이메일을 보냈다.


승인을 받지 않고 임의 시공된 부분이 포함된

사용 승인 도서에 설계자 날인을 거부한다.


임의 시공에 대한 경위서를 작성하여

본사 정식 공문으로 보내라.

대표이사 날인이 없을 경우

사용 승인 접수를 거부한다.


그리고

난 어떠한 전화도 받지 않은 채

사무실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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