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없는 현장
감리업무 수행하는 첫 현장 방문은 늘 현장사무실 비치 물품에 대한 점검으로 시작한다. 법에서 정한 물품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안전관리는 최소한이라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감리업무는 건축설계 분야의 연장선에 있는 업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찾는 건 도면이다. 그것도 실시도면. 하지만 도면이 온전히 현장에 비치된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낱장으로 들고 다니며, 너덜너덜해진 경우도 흔하다.
현장 사람들은 필요한 부분만 따로 출력해 들고 다닌다. 1:60부터 1:10까지의 도면들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잘 보지 않는다. 공사 중 필요할 때마다 평면도를 확대해 부분 출력으로 대체한다. 그러다 보면 ‘도면을 왜 그리는 걸까’ 싶을 때가 많다.
이런 경우가 많다 보니, 현장 경험이 많은 건축사들은 기본도면이라 불리는 평면도·입면도·단면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집어넣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만 작성한다.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건축사들이 오히려 창의적이지 못한 셈이다.
상세도면을 거의 보지 않는대도, 설계자들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도면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묻고 싶어진다.
공사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터파기 이후 철근 배근이다.
토목 분야는 구조계산대로 철근을 일일이 배근도에 표기하지만, 건축구조 도면은 약식 기호만 표기한다. 과거에는 건축구조도 일일이 배근도를 작성했으나, 어느 순간 가독성을 위한 것인지, 보기 좋으라고인지 알 수 없지만 기호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실제 배근을 하는 시점에 가서야 문제를 발견한다.
최근 현장에서 실제로 겪은 일이다. 구조도면에는 계단 배근을 슬래브와 정착하기 위해 계단 방향으로 세로 보강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보강하는 철근은 간격 치수였다. 도면에 표기된 철근 간격대로는 시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철근업체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간격대로 배근하려면 가로 보강이 맞습니다. 세로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결국 현장에서는 도면과 달리 가로 방향으로 배근을 해놓았다.
도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현장은 각자 자신이 아는 방식대로 해석해버린다.
나는 현장소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구조기술사에게 간격 수치가 맞는 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이상했다.
그 결과 이미 배근한 철근을 드러내고, 다시 배근해야 했다.
도면이 현장에서 구석에 방치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설계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는 생긴다. 하지만 도면을 왜 그리는지, 작성 순서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하던 대로’만 반복하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현장 관계자들에게는 도면 작성의 맥락과 이유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건축사들 또한 자신이 배운 방식을 답습하기보다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는 아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네가 뭔데’라며 치부할 수도 있다.
맞다. 그래서 나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