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어떡하고 유학을 가?(5)
(원래는 제이와 어떻게 연애를 시작했는지로 이야기로 끝을 내려고 했지만, 친구가 읽어보더니 그 이후 이야기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하여 씁니다)
우리나라는 소개팅을 하고 세, 네 번 정도 만나고 나면 사귀자고 고백을 하고 “우리 오늘부터 1일”이 시작한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은 안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이게 과연 사실인지 너무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람바이사람, 케이스바이케이스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와 제이는 3번째 데이트에서 ‘파트너(partner)’가 되기로 정하고, 서로 ‘익스클루시브(exclusive, 배타적인)‘하기로 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파트너를 묘한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연인을 통칭하는 말로 쓰고 있다. 이성이랑 사귀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자친구, 남자친구 보다 더 넓은 개념의 단어가 필요한 것이다. 'exclusive'의 의미는, 앞으로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지 않고 너만 만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동시에 여러 명과 데이트를 하는 것도 용인되는 듯 하다. 보통 미국에서는 수개월을 데이트하고 이런 exclusive 관계에 들어간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첫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음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남자친구를 몹시 맘에 안 들어했었다. 그 후로 연애를 한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한 적이 없었다. 30대 초반이 지나면서는 오히려, 엄마는 연애를 안 하는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친구들의 자식들이 결혼하고 손자를 보면서 엄마의 걱정은 커져만 갔는데, 미국 유학으로 쐐기를 박은 격이었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제이랑 사귄 지 얼마 안 되어서 새로운 남자 친구의 존재를 이야기했다.
“엄마, 나 남자친구 생겼어. 근데 미국인이야”
엄마의 반응은 기대와 달리 떨떠름했다.
“그래 잘해봐”
엄마는 내가 유학을 가면서 내가 미국에서 영원히 살고 자주 못 보게 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딸이 미국인과 연애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 미국에 자리 잡아 영원히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까 봐 엄마의 마음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토종 한국인이 토종 미국인을 만나니 그 연애가 쉽지는 않다. 한국 사람끼리 만나도 남녀 차이로 복작복작하는데, 여기에 문화적 차이, 언어 장벽까지 더 해지니 가끔은 환장할 노릇이다.
제이는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한다. 좋아하다 못해 주식이다. 한국인인 나는 밥과 김치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 제이의 가족들은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 파스타, 고기, 치즈, 빵이 주식인 전형적인 미국 백인 중산층 가정이다. 제이의 부모님 집에 며칠 묵은 적이 있는데,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며 느끼한 속을 달랬다.
언어 장벽은 또 어떠한가. ‘답답하다’ ‘속상하다’ ‘정들다 ‘ ‘시원하다’ 등 한국인이 표현하는 미묘한 감정과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영어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서로가 함께 있는 미래를 그리며 가장 어려운 점은 어느 나라에서 살 것인가이다. 제이는 미국 밖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그가 하는 일의 특성상 미국 외에서 일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미국에 정착할지, 그리운 내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지 늘 번뇌한다. 한 사람의 나라를 선택하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은 새로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혀야 하며 가족들도 자주 만날 수 없기에 포기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나와 그의 국제 연애는 현재진행형이다. 분명한 건 나는 그가 백인이라 좋아하는 게 아니고, 그는 내가 동아시아인이라 좋아하는 게 아니다. 만나 보니 미국 사람도 희노애락이 있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온갖 걱정은 미래에 맡긴 채 지금 이 순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연애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