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셔스 Jun 15. 2023

싫어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왜 나눠줘?

떡볶이로 보는 한국인의 정 모먼트

미국인 남자친구 제이와 처음 데이트를 할 때 그의 집에 종종 놀러 갔다. 그는 룸메이트 C와 살고 있었으며 둘은 직장 동료이다. C는 극도로 예민한 예민 보스라 저녁 8시만 넘어도 숨소리, 발소리, 문고리 소리도 내면 안된다.  제이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C의 눈치를 보느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당연히 C에 대한 나의 감정은 좋을 리가 없었다. 영어도 서툴 때라 “나는 C가 싫어(I hate C)"라며 극단적이고 단순한 표현 밖에 쓰질 못했다.


어느 날은 떡볶이 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 떡볶이를 해 먹기로 했다. 한국인 특성상 기본 요리양이 많고, 혹은 적게 요리해도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는 게 국룰이라, 나는 요리 후 반찬통에 떡볶이를 좀 덜어서 제이더러 C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제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너 C가 싫다며 음식은 왜 나눠주는 거야?


당황스러웠다. 내가 C의 행동이 싫은 거지 C라는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파란 눈의 미국인에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까지 있는 한국인의 정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했다.


문제의 그 떡볶이. 결국 C도 맛있게 먹었다.


이번에 긴 휴가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올 때 뭘 사 오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요즘 한국에서 약과가 인기라서, 시판 약과를 잔뜩 사 와서 사무실에 갖다 놨다. 코리안 허니 쿠키(Korean honey cookies)라고 소개하니 국적, 남녀노소 불문 맛있다고 난리다.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집에 조금만 가져가도 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도 여행을 다녀오면 소소하게 초콜릿 같은 걸 갖고 오지만 한국처럼 거의 반 의무처럼 (때로는 주객이 전도될 정도로)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이렇듯 정에 대한 역치가 다르지만, 나는 정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는 편이다. 한국의 설날과 추석은 중국, 베트남도 같이 쇠므로, 해당 국적의 사람들과 같이 축하를 하고, 미국 사람들에게도 코리안 땡스기빙데이 혹은 코리안 뉴이어 데이라고 하며 이메일로라도 카드를 한 장 보낸다. 한국 스승의 날에는 국적과 상관없이 고마운 분들께 코리안 티쳐스 데이(Korean Teacher's day)라고 하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메일 보낼 때 애용하는 카카오 프렌즈 이미지. 카카오 프렌즈는 어디서나 인기만점.

이러면 본의 아니게 나를 각인시키는 기회가 된다. 물론 계산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다. 미국은 다양성(diversity)를 중시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유니크한 문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이가 야간 당직을 할 때, 도시락을 싸 줬다. 갑자기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이게 그 정도로 감동할만한 일인가?’ 나는 잠깐 당황했다. 먹을 것으로 격려의 마음을 전하는 한국인의 정을 그는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정이라는 말을 번역할 영어 단어가 없다. 누가 아시면 제발 알려주시길.




작가의 이전글 손녀의 파란 눈 남자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