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에서 우리 팀의 팀원 수는 20명 정도 된다. 우리 팀은 미국인은 물론 한중일, 남미, 중동, 유럽 등에서 온 사람들로 이뤄진 매우 다국적인 팀이다. 영어 실력도 가지가지이고, 억양도 당연히 가지가지이다. 특히 남미에서 온 사람들은 특유의 스페인어 (혹은 포르투갈어) 엑센트가 있어서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익숙해진다.
프랑스에서 온 팀원 역시 그의 영어에는 프랑스어 엑센트가 있다. 어릴 적 해리 포터 시리즈 책을 읽을 때, ‘플뢰르 델라쿠르’라는 프랑스인이 조연 인물로 나왔다. 그런데 번역가가 플뢰르의 영어를 번역할 때 "아니라구용", "뭐라구용" 이런 식으로 유난스럽게 번역을 했던게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이해가 간다. 그들의 영어에는 특유의 콧소리로 흥흥 대는 게 있다.
우리 팀에서 한국인은 내가 유일하다. 중국인, 일본인은 있다. 미국 사람들이 보기엔 개긴 도긴이겠지만, 우리에겐 당연히 다른 나라다. 유일한 한국인 팀원으로써의 장단점이 있다.
우선 단점을 보면, 가끔씩 외로움을 느낀다.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끼리는 특유의 유대감이 있다. 자기 나라말로 그들끼리 가끔씩 빠르게 떠들어 대는 걸 볼 때면 부럽다. 영어로는 유창하게 이야기 하기가 힘들다.아무래도 모국어로는 유창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끼리는 친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도, 문화적 벽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엔 장점이 더 많다.
우선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게 은근히 편하고 나만의 시크릿 코드처럼 느껴진다. 회의할 때 너무 지루할 때, 수첩에 아.. 지겹다.. 졸리다.. 배고프다.... 등등을 한국어로 적는데, 남들이 보기엔 내가 회의에 집중해서 필기하는 것으로 보이니까, 바로 옆에 미국인 상사가 앉아 있어도 맘껏 헛소리를 적을 수 있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도 나만 봐야 하는 게 있으면 한국어로 해놓으면 사실 아무도 알 수가 없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물론 공유되어야 하는 자료는 반드시 영어 타이틀로 잘 작성해 놓는다.
그리고 또 다른 장점은, 한국 사람이 1명이라도 있으면 존댓말을 하고 호칭을 달리해야 하는 수직 구조가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그럴 일이 없다. 여기서는 ‘제임스’ '엠마' 이런 식으로 서로 이름을 부른다. 심지어 보스를 부를 때도 모두가 직급, 나이 상관없이 보스의 이름을 부른다. 만약 한국인이 있으면 회사이기 때문에 oo 씨라고 불러야 하고 존댓말을 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직장 동료들과 너무 친해지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만약 한국인이 1명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수 없이 사적으로 친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이런 중소규모의 다국적 팀에서 소수의 같은 나라 사람끼리 사이가 가깝지 않은 것도 좀 웃긴 일이다. 만약 그 사람과 성격이 안 맞는다면? 대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살면서 직장 사람과 사적으로 친해지는 게 삶에 도움에 되는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장점을 뒤집으면 한국 직장의 단점일 것이다. 물론 밥 벌어 먹고 사는 일은 어디든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