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샤워에서 만난 낯설음
오늘은 회사에서 베이비 샤워(baby shower)를 했다. 살면서 베이비 샤워라는 걸 직접 가본 건 처음이다.
베이비 샤워는 임산부가 출산이 가까워지면 다 같이 모여서 출산(혹은 예비출산)을 축하하는 행사다. 음식을 준비하고 다 같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덕담을 했다. 임산부에게 선물도 주는데, 임산부가 아마존에 장바구니에 필요한 물품을 담아놓고 그 링크를 공유한다. 링크로 접속하여 내가 결제를 하면 직접 그에게 배송이 된다. 아마존 녀석들. 장사수완이 엄청나다.
주최자가 게임도 몇 가지 준비했는데, 그중 하나는 임산부의 배 둘레 사이즈 맞추기였다. 가장 가까운 숫자륵 적어낸 사람이 우승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작은 논란이 생겼다. 피트(feet)나 인치(inch) 같은 미국 단위가 익숙하지 않아 cm로 적고 싶다는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 때문이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나다.
임산부 옆에 나란히 서보고 내 허리 사이즈와 비교해 가며 추측을 해봤다. 100센티는 넘어 보인다. 대충 109cm로 찍었다. 내 이름과 109cm, 그리고 이를 환산한 44인치를 적었다.
주최자가 발표를 했다. 와우, 찍신이 강림했다 10명이 넘게 참여했는데 내가 승자가 되었다! 부상은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다. 5달러짜리 카드였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실 수 있다.
미국에 와서 제일 혼란스러운 게 바로 단위이다. 피트와 인치, 마일, 화씨, 온스와 갤런, 파운드. 도저히 감도 안 온다.
내 키는 5피트 9인치야.
키가 큰 거야 작은 거야?
2마일 더 가야 해.
다리 아파 죽겠는데 얼마나 더가야 하는 거야?
1파운드 살이 쪘어.
많이 찐 거야 조금 찐 거야?
오늘은 68도야.
68도면 지상 위에 있는 것들 다 타 죽는 거 아냐?
한 사람이 단위에 대한 감각을 습득한다는 것이, 그 사회의 문화와 상식과 통념을 흡수해 가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외국에 와서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
섭씨온도를 처음 제창한 사람은 18세기 스웨덴의 물리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 섭씨온도를 셀시우스 (Celsius)라고 한다.
눈치채셨겠지만 나의 브런치 필명인 ‘셀셔스’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화씨 70도를 적당한 날씨라고 주장하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내 온몸의 감각은 섭씨 21도가 쾌청한 날씨라고 이야기한다.
외국에 사니까 오히려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익숙치 않은 단위에 대한 낯섦은 바로 그 순간들 중 하나다. 평생동안 익숙해진 섭씨온도에 대한 직관은 아무래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브런치 필명도 왠지 변치 않을 것 같다.
Tip: 미국에서 알아야 할 필수 단위들
1 km = 0.6 마일(mile)
1마일이 대략 1키로미터의 절반정도 된다. 가령, 3마일이면 x 2를 해서 대략 6km라고 생각하면 된다.
화씨 0도- 100도
100도에 가까우면 매우 더운 것이고, 0도에 가까울 수록 매우 추운 것이다. 대략 화씨 60-70도 전후가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는 온도다.
450g = 1 파운드(lbs)
1파운드를 대략 500 그램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473ml = 16 온스(oz) - 스타벅스 그란데 사이즈
500ml 우유 하나가 16온스라고 생각하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