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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함의 상징 미국 유학, 제가 한번 해 봤습니다.

by 셀셔스

내가 중학생 때쯤부터 조기 유학 열풍이 불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다. 어린 마음에 너무 부러웠고, 나도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집 경제 사정은 호주나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내줄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난하진 않았다.


그러다 내가 10대 후반 때부터는 상당히 어려워졌다. 한 마디로 가세가 기울었다. 그 이후로 유학은 먼 다른나라 세상의 이야기였다.


2023년 상반기를 휩쓴 드라마 더 글로리는 가정폭력, 학교폭력, 그리고 가난의 희생자인 주인공의 복수극이다.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주경야독으로 수능 공부를 한다. 나도 내 인생을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오직 수능이었다. 다행히 공장에서 일하진 않았고 죽어라 공부를 해 수능을 만점 가까이 맞았다. 적성을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SKY가 아닌 교대, 의학계열처럼 취직이 잘되는 학교에 지원을 했다.




08학번으로 교대에 입학한 문동은은 김밥을 먹으며 과외 알바를 한다. 08학번인 나도 똑같은 시기에 비슷한 삶을 살았다. 주말에 편의점 김밥을 먹으며 하루종일 과외를 했다.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이동시간을 정한다. 이렇게 하면 하루에 최대 5개의 과외 알바를 할 수 있다. 저녁 무렵이면 목이 쉰다. 이런 식으로 여름방학, 혹은 겨울 방학 두 달 내내 알바를 하면 약 400-500만 원 정도 모을 수 있다. 그럼 딱 다음 학기 등록금이 된다. 공부를 잘해서 시급이 높은 과외 알바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대학을 마치고 돈을 벌고 우리 집안 형편이 좀 나아지기까지 5년이 걸렸다. 문동은이 복수를 끝내고 건축을 다시 공부한 것처럼, 나도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해보자라고 결심을 했다. 내 꿈은 성적이든 금전이든 취직이든 현실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최고의 학교에서 최고의 인재들과 최고의 교육을 받아보는 것이었다.


미국 유학 = 좀 사는 집으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꼭 부자여야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최소 3-4년 정도 걸리는 미국의 박사과정은 대부분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주기 때문이다. 즉 석사는 대부분 자비이며, 박사는 대부분 장학금을 받는다.

이렇듯 박사를 가면 돈을 아낄 수 있지만, 나의 한국에서의 경력, 실력과 영어 능력으로는 내가 가고 싶어 하는 미국 명문대의 박사 과정으로는 갈 수 없단 걸 알았다. 자비로 가는 석사는 가능성이 보였다. 또다시 현실에 맞추는 선택을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돈은 없었지만 붙기도 전에 걱정하는 건 하등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은 김밥으로 때우고 매일 밤 영어 공부를 했다. 그렇게 지원을 했고,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아는 학교 15곳으로부터 합격 편지를 받았다.


어머니에게 첫 발표 학교였던 존스홉킨스에 붙었다고 얘기했다. 어머니는 얼굴이 굳었다. 축하 인사는 일언반구도 없이 “등록금은?”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절대 어머니를 비난할 수가 없다. 미국 사립 대학의 석사 프로그램의 일 년 등록금은 7만 불 우리 돈으로 8천만 원에 달한다. 8천만 원은 4년 등록금이 아니다. 이건 1년 등록금이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문동은의 엄마는 인간 말종 가해자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딸의 꿈과 눈물을 모른 척할 수 없는 분이다. 결국 내 대학원 등록금은 엄마가 끝끝내까지 지켜왔던 노후자금으로 내는 불효를 저질렀다. 이렇게 나는 어머니의 쌈짓돈을 탈탈 털어 보따리 하나 싸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보스턴에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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