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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Aug 09. 2023

새벽 6시 강남 영어학원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몰랐겠구나.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꼽으라면 어느 가을 새벽 6시 강남역 영어학원의 강의실 문을 열던 순간을 꼽을 것이다.


당시 나는 급하게 영어 토플 시험 점수를 따야 했는데 경기도 이천에 있는 직장은 계속 다녀야 했다. 내가 듣고 싶던 일타 강사 선생님 수업은 아침 6시 수업 혹은 오전 늦은 시간 밖에 없었고 내 퇴근시간 즈음에는 강의가 편성되어 있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새벽 6시 수업에 등록했다. 이천에 있는 집에서 새벽 4시에 나와 강남역 행 경강선 첫 열차를 탔다. 첫 수업을 가던 날, 솔직히 이 이른 아침에 과연 몇 명이나 올까, 강의실에 5-6명 정도 많아야 10명 정도 있겠지, 학원이 수지타산이 맞을까라는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꾸벅꾸벅 졸면서 1시간이 걸려서 강남역에 도착했다.


졸음 때문에 비몽사몽 상태로 강의실을 찾았다.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내 졸음은 한 번에 날아갔다. 100명이 넘게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은 눈으로 대충 세어도 거의 꽉 차 있었다. 동도 트기 전인 새벽 6시에.


강의실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2030 직장인으로 보였다. 대충 추리닝을 입고와서 졸음에 겨워 선생님 말씀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가고 있는 나와는 달리, 출근 준비를 마친 옷차림도 모두 단정 했고 눈망울도 또랑또랑했다. 일타 강사 선생님은 두말 할 것 없이 완벽한 화장과 세팅으로 강단에 서 계셨다.


나는 소문난 잠만보로 아침잠이 너무 많아서 알람 무한 반복은 기본이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 지각하든 말든 아침에 잠만 퍼질러 자는 나에게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물을 뿌린 적도 있다. 나는 아침잠이 많아도, 내 할 일을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새벽 6시 꽉 찬 강남역 영어학원의 강의실은 엄마가 뿌린 물 한 바가지보다 훨씬 더 차가운 얼음물 바가지였다.


내가 자고 있는 시간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몰랐겠구나.


결국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 만에 강의를 환불받았지만 영어 공부로 아침을 열어가는 강남역 직장인들의 모습은 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새벽 강남역 영어학원뿐이 아니었다. 처음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유명 재수학원을 다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콩나물시루만 한 강의실에 60명이 앉아서 서울대를 가겠다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종일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서울대? 전설 속에 나오는 학교인 줄 알았는데 옆의 친구들은 정말로 서울대에 가겠다고 한다. 6월, 9월 전국 모의평가 수석은 복도에서 지나가다 본 옆반 학생이었다. 학원 선생님들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선생님은 ‘수능 올 1등급을 받아야 하니 일년 내내 과자는 빼빼로만' 먹으란다.


보스턴으로 유학 와서 또 한 번 나의 시야는 넓어졌다. 인도, 중국, 미국, 중동, 남미, 유럽, 그 어느 나라든 그 나라에서 최고의 인재들이 보스턴에 모여든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산다고 나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하버드 치대를 다닌 친구의 구글 캘린더는 온갖 학업 일정과 공부로 꽉차 있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의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내 상사의 이메일은 항상 밤 11시에서 밤 12시 사이에 온다. 낮에는 진료와 회의를 하다가, 밤이 되서야 짬이 나서 잡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잠만보인 내가 미라클 모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상사처럼 워커홀릭으로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새벽 6시 영어학원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 걸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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