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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Aug 12. 2023

나의 고졸 검정고시

브런치에서 야학에서 선생님을 하시는 분의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야학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잊고 있던 나의 고졸 검정고시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7월, 그해 11월에 있는 수능을 목전에 두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사고를 치거나, 교우 관계 문제는 아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데 내신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수능은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가 자격 요건이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면 자동으로 그 해의 수능은 볼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고교 중퇴 후에는 일정기간이 지나야 고졸 검정고시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수능을 보는 자격이 주어진다.


남들은 학교를 그만둔 게 용기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겁쟁이에 가까웠다. 그간 열심히 공부를 안 해서 수능을 잘 못 볼게 두려웠고 내신을 제대로 관리 못한 내 게으름이 부끄러웠다.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방을 노린 도박꾼이었다.


부모님은 다행히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고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수능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으로만 공부를 하지 실제로 내 생활 패턴은 엉망이 되어갔다. 밤새 놀면서 컴퓨터를 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좀 공부하는 척하다가 다시 놀고. 이 생활이 반년 넘게 지속이 되었다. 친구들은 공부해야 하니까 아무도 만날 수 없으니 약간의 대인기피증 마저 생기고 있었다. 이렇게 놀다 보니 위기감이 찾아왔다. 수능으로 대박 나겠단 처음의 거창했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최종학력 고교 중퇴에 샤워도 안 하고 밤을 새워서 폐인이 된 백수 한 명이 거울에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재수학원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학원생들이 대학을 잘 가기로 유명한 재수학원에 입학시험을 쳤고 운이 좋게 합격했다. 당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엄청 어려웠는데 내 인생을 바꾸려면 꼭 이 학원에 가야 한다고 어머니를 졸랐다. 그리고 추웠던 어느 2월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강남에 있는 재수학원에서 수능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고졸 검정고시는 4월과 8월, 1년에 두 번이 있다. 나는 4월 시험에는 자격 요건이 안 돼서 8월 시험을 보게 되었다. 학원에 같은 반 친구가 나와 같은 이유로 외고(외국어고등학교)를 중퇴하고 4월 검정고시에 합격했는데, 이 친구한테 물어보니 고졸 검정고시는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나는 친구 말을 믿고, 기출문제를 보지도 않고 밤새 새벽 6시까지 미드를 보고 시험장에 갔다.


내가 들어간 수험장에는 주로 중년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 할머니, 모델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 초등학교 고학년 나이로 보이는 아이, 그리고 내 또래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학원 친구 말 대로 하나도 어렵지가 않았다. 우리는 수능이라는 더 난이도 높은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왜 이렇게 쉬워? 이것도 시험이라고 낸 건가? 하면서 10분 만에 문제를 모두 풀고 정답 마킹까지 끝냈다.


마킹을 다 끝내고 주변을 둘러봤다.  긴장한 표정으로 시험을 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괴로워하는 모델 남자 등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 내내 모두 열심히 풀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갑자기 내 오만함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삶의 시련이나 실패가 찾아왔던 사람들이다. 특히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먹고 사느라 혹은 여자라서 등의 이유로 공부할 때를 놓치셨으리라. 이 자리에서 시험을 보기 까지 얼마나 각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어려움과 노력이 있었을지, 평탄하게 정규 교육을 잘 받고 대학을 준비하는 나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미국 입학 지원서의 사골 국밥 수준의 단골 질문은 “당신의 삶에서 역경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해보세요”이다. 우리나라도 같은 질문을 입사지원서나 대입 자소서에서 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면 단 한 번도 좋은 결과가 없었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자상한 어머니와 엄격하신 아버지 밑에서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고 해야 인성이 괜찮을 거라는 기대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진심으로 언더도그(underdog) 스토리를 좋아한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가난한 싱글맘 가정에서 살았다거나, 인종 차별을 겪으며 온갖 고난을 극복했다 등등..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을 보면 그녀는 아버지가 아픈 이야기를 자기소개서에 쓰고 프린스턴에 합격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부유한 학생들은 에세이를 쓸 때 소재가 없어 오히려 힘들다고 한다.


역경을 극복한 사람에게선 들꽃 향기가 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나는 그날 고졸 검정고시 수험장에서 잊히지 않는 들꽃 향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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