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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Aug 14. 2023

글쓰기는 즐겁다.

단, 취미여야 즐겁다.

나에게 브런치 글쓰기는 스트레스가 1도 아니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쭈욱 써가고, 심지어 가끔은 주술 호응이 안 맞는 비문도 있다. 글을 업로드를 한 후, 누가 라이킷을 해주면 감사하고 좋지만, 글이 인기가 없다고 속이 상하진 않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라이킷이나 구독이 없다고 내가 밥을 굶지 않는다.


반면, 나의 또 다른 글쓰기는 너무나 괴롭다. 내 주 업무인 바로 논문 쓰기이다. 논문은 한 줄 한 줄 써 가는게 고난이다. 우선 논리적이어야 하고, 내 주장을 한 마디라도 덧붙이려면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내 뇌내망상(이른바, 뇌피셜)이면 안된다. 한 단어 하나로 향후 리뷰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을지 말지 결정되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골라야 한다. 심지어 주로 영어로 써야 하기 때문에 내 영어 문장이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늘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아직 주니어 레벨이기 때문에 내가 작업한 글은 시니어급의 리뷰를 받는다. 나 스스로 잘 썼다고 자화자찬하고 보내도, 회신 온 것을 열어보면 빨간 줄의 딸기밭이다. 엄밀히 말하면 ‘라이킷(좋아요)’은 없고 ‘디스라이킷(싫어요)’만 잔뜩 받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열심히 고치고 고쳐서 논문을 투고해도 거절(rejection)은 다반사이다. 냉정한 아카데미아의 세계에서는 세계적 석학이라고 해도 수차례의 게재 거절은 피할 수가 없다.


나의 신변잡기적 글쓰기와 논문 쓰기의 가장 주된 차이는 이게 내 밥벌이인가 아닌가이다. 내가 에세이를 못 써도 누가 아무도 뭐라고 안 하지만, 내 주된 밥벌이인 논문은 “잘”해야 하고, 남들의 엄정한 평가를 받는다. 내가 만약 전업 수필가(에세이스트)로 어딘가에 투고를 하고 윤문을 해야 하고 이를 대가로 돈을 받는다면, 나의 에세이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닌 또 하나의 직업이 될 것이다.


어떤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혹은 생계와 연관되는 순간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마치, 헬스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운동이 즐겁다고 하지만, 올림픽 챔피언들의 인터뷰를 보면 운동을 지긋지긋해하고, 음악이나 미술 같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이 예술을 하면 반대하는 경우처럼.






10개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고 지금은 구글에서 일하는 직장생활 만렙의 김은주 디자이너가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라는 책에서 말한다.


“감정이 상하는 이유는 내 감정에 올인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나’로 즐거움을 최대한 분산하면... 즐거움의 강도와 총량이 커진다 “


그녀는 ‘부캐(부가적 캐릭터)’를 키우고 ‘직장과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썸을 타라’고 한다. 연구자의 글쓰기는 나의 ‘본캐’이지만, 수필가의 글쓰기는 나의 ‘부캐’라고 볼 수 있다. 본캐가 직장과의 연애에서 시련을 당하고, 그 시련의 대가로 통장에 입금을 받는다. 금융 치료만으로는 이 시련을 회복하기에 좀 부족한데, 취미용 글쓰기라는 부캐가 나의 자존감을 올려준다. 연구자의 글쓰기와 수필가의 글쓰기는 내 내면의 평화에 상호 보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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