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화장실 문화
얼마 전 약국에서 약을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 중국계로 보이는 한 여자가 약을 타고 있었다. 접수원에게 이야기하는 이름과 영어 억양을 들어보니 역시 중국인이었다. 약을 받고 나서 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본다.
“Can I use toilet? (토일렛 쓸 수 있나요)? “
미국인으로 보이는 직원이 되묻는다.
“You mean, bathroom? (배쓰룸 이야기 하는 거 맞나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표지판을 살면서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화장실 = Toilet (토일렛). 대한민국의 국룰이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영어 단어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화장실이 어딨는지 물을 때 아무도 토일렛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구글에서 toilet(토일렛)을 검색하면 화장실이 아니라 변기가 나온다. 즉 토일렛은 변기를 가리키고, 화장실 자체를 이야기하려면 bathroom(배쓰룸)이나 restroom(레스트룸)이라고 한다는 걸 미국에 와서 배웠다. bath는 영어로 목욕이니까, bathroom은 욕실을 이야기하는 거라는 착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어디에서든 화장실을 통칭해서 쓰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토일렛이든 베쓰룸이든, 상대방이 찰떡같이 알아들어주고 언어라는 게 뜻만 통하면 그만이니 아무렴 어떨까 한다.
화장실 단어와 더불어 하나 더 흥미로운 것은 모든 젠더(성별)를 위한 화장실이다.
리버럴 한 성향이 있는 미국 기관/학교에서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LGBTQ+)에 대해서 어찌보면 강박적일 정도로 배려 한다. 그래서 모든 성별이 다 쓸 수 있는 화장실을 마련해 놓고 “깨어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MIT 대학교 메인 도서관인 헤이든(Hayden) 도서관 화장실도 남녀 공용으로 되어있다. 다만 소변기가 밖으로 나와 있진 않고, 칸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남녀 공용 화장실을 오히려 우리나라에선 깨끗한 신식 건물 보다는,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볼 수 있다. 대학 신입생 때 술을 잔뜩 마시고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에서 그날 처음 본 성별이 다른 선후배를 마주쳐서 서로 민망해한 경험을 많은 사람이 해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녀 공용화장실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오히려 이 공용화장실에서의 성범죄의 위험성까지 우려하기도 한다. 그 오래된 낡은 공용 화장실이 미국에선 계몽적인 것으로 치부되니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