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험이든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소중하지 않은 경험은 없었다.
문득, 갑자기 생각이 나서 동기들 인스타그램을 찾아봤다. 다들 별 변화 없이 살고 있었다. 나는 의학계열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대학 동기, 선후배들은 다 똑같은 일을 한다. 다들 자기 병원을 개원을 하고, 하루종일 환자를 본다. 환자군은 달라도 디테일만 다르지 하는 일은 똑같다. 우리 동기 중에 본인 병원을 개원을 안 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고, 개원을 안 한 친구들도 어차피 고용의 형태만 다르지 다들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요즘은 다 병원 홈페이지는 기본이기 때문에, 동기 선후배들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하면 네이버에서 조금만 검색해도 나온다.
나는 이 환자 보는 일을 5년 넘게 했다. 중간 중간에 쉰 기간까지 포함하면 8년 가까이 된다. 남들이 보기엔 문제없이 일을 잘해 나아가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매우 나를 깎아 먹어야 했다. 겉으로는 활달하고 털털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예민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환자 수만명을 봤다는 전홍진 선생님에 따르면 예민한 사람들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대인 관계에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
2.소리에 민감하다.
3.감정의 동요가 심하고 감정이입이 잘된다.
나는 이 모든 세 가지 예민함 요소에 해당이 되는데, 이 요소들은 하루종일 사람을 대하는 일에 매우 부적절한 요소들이었다.
대인 관계에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
환자(손님)의 온갖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을 끊임없이 해석한다. 이 신호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반응해야 하는 걸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게다가 오늘 내 진료실에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르고 이는 예상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내 진료실에 들어오는 사람은 남녀노소 직업귀천이 없다. 가끔은 진상 환자가 오기도 한다. 견디다 못해 진상 환자들과 싸운 적도 있다. 그리고 병원에서 내 매출이라도 떨어지면, 대표 원장님 눈치가 보이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든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떡실신한다. 환자가 나으면 보람이 있어서 에너지가 충전이 되지만 사실 에너지 충전량보다는 소진량이 더 크다.
소리에 민감하다.
지금 바로 내 눈앞에 환자를 대하고 있어도, 진료실 밖에서 나는 소리가 다 내 귀에 들어온다. 그럼 밖의 상황이 신경 쓰인다. 앞에 있는 환자를 대하면서, 밖의 상황, 어떨 때는 옆방까지 신경이 쏠리니 에너지가 배로 든다.
감정의 동요가 심하고 감정이입이 잘된다.
나는 새드엔딩 영화도 안 본다. 슬픈 감정이 전이가 되어 내 감정을 동요시키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 눈앞에 환자 이야기를 들으면, 감정이 전이를 막을 수가 없다. 가령, 경제적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환자가 있으면 '비싼 비급여 치료가 최고의 옵션인데, 깎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히 이러면 매출도 잘 안 나온다. 가족과의 갈등(가령 남편, 시어머니)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으면, 그 사람의 울분과 감정적 동요가 나에게까지 전달이 된다. 이걸 적당히 컷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생사(生死)와 관련된 케이스가 있으면 말할 것도 없다.
멀고 먼 길을 돌아 지금은 책상 앞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를 보고, 숫자를 보고, 데이터를 보고, 논문을 보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종일 입을 열지 않는 날도 많고, 만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 물론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업무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춰야 한다. 연구는 일이 끝도 없고, 삶과 일이 분리가 되기가 어렵다. 그래도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매일 보는 상사들 외에는 없다. 상사들이 주는 압박감과 날선 지적에 힘들다가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반말을 해대거나 얼토당토 말도 안되는 걸로 힘들게 했던 환자들에 비하면 약과라는 생각이 든다.
환자를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고, 그 일이 천직인 사람들도 주변에 많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은 돌고 돌아 적성을 찾은 것 같다. 내 20대를 모두 보냈다. 처음부터 이런 길을 갔으면 나의 소중한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걸어온 길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당시, 그 순간에는 내 눈앞에 놓인 선택지 중에 최선의 선택지를 골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험이든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소중하지 않은 경험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