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착한 아이'로 통했다.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적도 없고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른 적도 없다. 필요한 것이 있어도 사달라고 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필요가 아닌 나로 인한 소비는 허락되지도 않았지만 나도 굳이 욕심을 내지 않았다. 무언가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부모님의 반대의견 한마디면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고분고분 해지고는 만 것이다. 순종적인 성격 탓에 부모님께 나는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인 적 없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딸'일뿐 정작 나는 내 힘으로는 뭔가 이룬 적이 없는 시시한 삶이라고 곧잘 중얼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울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 됐어. 사는 게 너무 창피해. "
그때 나는 그 대사 한마디가 내 인생을 대변하는 말인 것만 같아서 한동안 침통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모님 말씀에 어긋나는 일 없이 착하게 살았는데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시시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20여 년 전,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나는 보건 쪽에 뜻이 있어 관련 대학을 알아보았지만 4년제 대학교가 아니라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의 반대에 너무 쉽게 내 꿈을 포기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지독히도 가난한 시절을 겪으며 대학교육이란 건 꿈도 꾸지 못한 분으로 아마도 자신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자식을 통해 해소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했더라도 정말 꿈이 간절했다면 나는 한 번이라도 부모님을 설득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부리는 고집이 부모님을 힘들게 할 거란 생각에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렇고 그런 4년제 대학교에, 더 별 볼 일 없는 학과에 입학하여 집과 학교만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내 뜻이 아닌 학교에 입학한 결과는 누구나 예상했듯이 공부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이대로는 취업도 불안하기만 했다. 의미 없는 공부는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보려 마음먹고 의지가 불타올랐을 무렵 아버지는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는 건 있을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서셨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는 거스르지 못하고 간신히 학교를 졸업했으나 그 후에도 나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수 없었다. 학원비와 생활비를 차마 대 달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자발적이지 못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항상 소극적이었고 내 의견을 끝까지 고수하지 못했다. 완강한 아버지의 반대와 고집 앞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얌전한 딸이길 택했기 때문이다.
나와는 반대 성향의 남동생과 비교해보면 남동생은 모든 게 나와는 달랐다. 당연히 지금의 삶도 나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남동생은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있으면 참지 않았다. 나와 엄마를 동원해서 아버지를 설득시켰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남동생의 성향이 그때는 표현하지 못했을 뿐 못마땅하게 느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와 나의 삶을 비교해보니 나는 많은 면에서 뒤처진다. 좋은 직장과 좋은 집, 좋은 차가 삶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눈에 보이는 일상의 많은 단편들이 남동생과 나와의 삶의 격차가 이제는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설거지를 하다가도 느닷없이 쓸쓸해진다.
더 슬픈 상상은 나의 아이들마저 또다시 예전의 나처럼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꿈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착한 아이'로 커가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내 속을 뒤집어 놓을지언정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끝까지 고집했으면 차라리 행복할 것 같아 요즘에는 내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의 표정을 조금이라도 보면 가슴이 뜨끔하고 혹여나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되새겨본다. 나는 우리 아이가 내 뜻을 거스르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착한 아이'라는 미명 하에 무채색의 삶을 살아온 나와는 다른 알록달록한 길을 걷기만을 바란다. 그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